코끼리의 이는 보여도 씹는 건 보이지 않는다
You See the Tusks, Not the Chewing Teeth
2026. 5. 30. - 7. 11.
박아름빛 Park Areumbit
지독하게 사실적이고 고질적으로 반복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민경(아트센터예술의시간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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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릿한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십오 년도 더 전에 봤던 미국 드라마가 생각났다. 내용은 미국에 존재하는 파티용품 판매회사가 무려 인도에 콜센터를 설립한 뒤, 현지인들을 취업시켜 미국의 고객을 응대하고, 물건을 판촉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은 코메디 장르의 드라마였다. 도대체 운영이 가능할지를 의심하게 만드는 설정은 인도인들의 매우 특징적인 억양에서 발생하는 당혹스러운 유선상황과 본국에서 파견된 미국인 관리자와 인도인 직원들 간의 문화 차이를 웃음의 소재로 전개해갔다. 아웃소싱(outsourcing), 즉 기업이 효율성을 기준으로 생산 체계를 구분하고, 비핵심적인 업무를 저렴한 인건비로 처리하기 위해 아예 다른 국가에 지사를 설립하는 방식은 현대 글로벌 자본주의 구조를 강화시킨 분명한 축으로 존재한다. 최저의 지출로 최고의 효율을 추구하기 위한 산업 형태는 생산 방식을 질적으로 구분하고, 생산력의 점령여부와 그 강도를 기준으로 세계의 지형을 중심부와 주변주로 분명하게 경계 지어간다. 생산 수단의 독점과 저임금 노동의 착취적 형태는 패권주의 국가에 더욱 강력한 힘을 실어주며, 이것은 새로운 유형의 식민주의(colonialism)로 비유되기도 한다. 핵심기술에서는 철저히 배제된 주변국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산업에만 머물게 되며, 이들의 성장 동력은 미진하게 유지될 뿐이다. 비전과 가치, 성과 공유의 부재 속에서 이뤄지는 무조건적 생산 형태는 따로 노는 머리와 몸처럼, 그 어긋나 버림으로 인해 삐걱거린다. 국가 이미지에서도 이들은 개발도상국의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언제나 주류에서 외면되어왔던 것이다.1) 더욱이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확장된 다국적 기업은 열악한 노동 환경을 외면하거나 미성년자 노동이나 강제 노동과 같이 노동자의 권리 문제를 회피하고 있기에 커져버린 덩치만큼 여러 문제들을 파생시켜왔다.
위기에 몰린 글로벌 자본주의 기업들은 최근 들어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한 듯 보인다. 극한의 ‘가성비’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 이제 더 이상 저 멀리 인도까지 갈 필요가 없다. 같은 장소에서 즉각 소통가능하고, 수십명의 인건비를 단 한 명의 몫으로 줄일 수 있는 혁명, ‘더 빨리 더 많이’의 생산 효율을 달성하게 할 이 기술은 바로 오늘날 AI 산업의 태동 지점이자 근본 전략처럼 존재한다. 심지어 인간의 사고회로를 모방하여 일을 처리하면서도, 결코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의 속성은 그동안 글로벌 산업주의를 괴롭힌 인도적 문제마저 지워버릴 수 있을 것처럼 존재한다. 인간이 아닌 존재가 ‘24/7’으로 일하는 시대에서 기업들은 인간, 노동, 인권, 윤리적 문제에서 해방된 채, 최대의 효율만을 추구할 수 있게 될까?
박아름빛의 개인전 《코끼리의 이는 보이지만 씹는 건 보이지 않는다》는 동시대 하이테크놀로지 기술이자 빠르게 성장 중인 AI 산업을 중심으로,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노동자인 AI 트레이너를 둘러싼 이야기를 다룬다. 필드 리서치, 데이터 수집과 분석을 기반으로 시작되는 작가의 작업은 하나의 소재를 중심으로 발생하는 개별적 이야기들을 영상, 텍스트, 드로잉 등의 감각적 매체로 종합하여 구축한다. 작가는 다수의 목소리에서 발견되는 미세하고 개별적인 요소들을 직조해가며, 이들과 연결되어 있는 또다른 계열을 찾아가는 데, 이윽고 다수의 관계망으로 이뤄진 오늘날의 해명에 도달하게 된다. 박아름빛은 이러한 자신의 작업을 가리켜 “고현학적 시선(archaeology of the present)”이라 말한다. 이것을 아주 단순화시켜 설명한다면 고고학적 방법을 동시대의 현상이나 세태에 적용하는 것인데, 작가의 작업은 기선별되고 간추려진 서사나 사료의 가치를 분석해 과거의 구조를 추론하는 방법이 아닌 현재 생동하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세계의 어딘가, 그리고 누군가의 이야기에 능동적으로 뛰어들고, 이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끌어낸다는 차원에서 그 방향과 강도에서의 차별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박아름빛의 작업적 방법론은 우리 모두가 고립되어 있지 않고, 언제나 타자 및 세계의 구조와 연결된 존재라는 조건 아래 그 가능성을 두는 것이며, 이것은 개체적 개별성(particularity)에서 동시대적 보편성(universality)을 발견하는 것으로 완결된다. 작가의 보편성은 이성적인 추론이나 이론적 명제 등의 관념에서 출발하지 않고, 철저하게 개별적인 이야기들로 쌓아 올려진다는 특징을 가진다. 이것은 작가 스스로가 세계와 부딪혀 얻어내는 결과값과 같은 것이다. 더욱이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처럼 때로 주류에서 제거되고, 가려진 이야기를 발굴하여, 현대를 이루고 있는 생생한 사실주의적 자료를 구축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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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의 메인 영상인 〈백-야드(Back-yard)〉에서 작가는 AI 트레이너의 모든 일상을 사실적 장면으로 가감 없이 보여준다.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일거리를 찾으며, 무슨 작업을 하며, 어떻게 작업의 평가와 보상을 받는지 등에 관한 이야기의 전부는 이들의 목소리 및 실제 업무 화면 기록과 함께 전달된다. 그리고 작가는 AI 트레이너의 일상을 수집하며 떠오른 사유의 단편들을 온라인 기반의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로 뒤섞어 영상을 구성하는데, 이로써 작가의 화면은 AI 트레이너 및 AI 산업구조를 둘러싼 총체적인 인상을 전달한다.
작품 관람의 시작과 함께, 직·간접적으로 축적된 우리의 AI 경험이 즉각 소환된다. 그러나 AI의 일반적인 이미지, 곧 자료를 명쾌히 분석하거나 명령을 즉시 재현해내는 등의 모습은 화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이곳에서는 이미지를 하나하나 체크하거나, 사진을 수집하고, 번역 오류를 확인하는 작업과 같이, 드문드문 이어지는 커서(cursor)의 동작만이 감지될 뿐이다. 건조할 정도로 사실적인 화면에서 우리는 ‘투박하고’ ‘수동적’이며 ‘느릿한’ 움직임들을 본다. 이것은 AI산업이 내세우는 ‘최첨단’, ‘자동화’, ‘광속’과 대치하며, 마치 민낯처럼 자리한다. 그렇다면 들려오는 목소리는 어떠한가? 인공지능의 종사자에게 으레 ‘전문적’인 이미지를 기대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작품에 등장하는 몇몇 AI 트레이너에게 이 일은 출퇴근이 필요 없는, 한달치의 급여를 이틀 안에 벌 수 있는 고효율의 단기노동 정도로 여겨진다. 그리고 이들의 ‘전문성’은 똑같은 작업을 “뇌가 완전히 막힐 정도로”2) 반복하는 것이다. 마치 단순한 기계의 작동처럼 말이다. 남들보다 빨리, 더 자주 접속할수록 좋은 업무를 배정받을 확률은 높아진다. 이를 위해 VPN(Virtual Private Network, 가상사설망)을 활용해 자신의 거주 국가를 주요 국가로 위장하고, 여러 계정을 만드는 것은 그다지 망설일 일이 아니다. 자신의 업무가 그것이 속한 기술선상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무엇에 기여하게 되는지에 관한 이해는 사치와 같이 보인다. 이들의 원동력은 이 일거리가 언제라도 없어질 수 있는 일회성이라는 점에서 추진되기 때문이다. 작품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감각적 요소는 현재 AI 산업이 내세우는 표면적 이미지에 정반(正反)하는 곳을 가리키며, AI를 둘러싼 양단의 상치되는 측면을 충돌시켜 끌어낸다.

업무에 대한 무관심성이나 자발적인 기계화와 같은 씁쓸한 현실은 사실 철저한 ‘배제됨’에서 비롯된다. AI산업의 하청 구조는 기술의 단계와 층위를 구분하고 그에 따른 국가와 노동자를 대응시켜, ‘고급 기술’의 유출을 방지한다. 단순 업무만을 배정받는 주변국의 AI 트레이너들은 그저 노동시간에 비례하는 수당을 받기 위해 일을 하며, 자신들의 결과물이 통과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연속 작업인 〈train-of-instagram-00000-00008〉, 〈이미지를 묘사하세요(Describe the Image)〉, 〈당신의 점수(Your Score)〉는 AI 트레이너가 수행하는 데이터 처리과정3)을 시각화한 것인데, 여기서 작가는 AI 기술에 트레이너의 국가, 인종, 문화, 언어, 세대의 관점이 개입될 수밖에 없음을 보게 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초국가적 성격의 AI 산업이 수많은 노동자들 위로 구축되고 있음을 암시하며 기존 산업에서 제조국을 표시하는 ‘made in (country)’‘made by (someone)’으로 변모되는 지점을 드러내고, AI가 가진 ‘객관성’의 환상이 ‘편향성’의 실재로 변모하는 순간과 함께 AI의 불완전성을 전달한다.
더욱 막강해지고 있는 자본주의 구조, 초국가적 하이테크놀로지 산업 뒤 인간 존재, 그리고 강력한 구조 속에서 변화되고 있는 노동자 신체와 내면은 〈시선 추적(Eye Tracking)〉에서 보다 밀도 있게 드러난다. 나의 고용주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이 기이한 산업 구조는 오직 과업의 대가로 지급받는 돈에 의해 굴러가는 가상의 생태계로 드러난다. 이 비가시적 산업 생태계는 기형적인 노동 구조로 체계화되는데, 분리된 머리와 몸, 맥락이 결여된 관계성은―AI 자신이 가진 기술적 속성처럼―극한의 마이크로한 감시와 통제를 실현하며 ‘결박당한 신체’를 보여준다. 이것은 단순히 구조와 개인의 대립 관계가 아닌 구조 안에서 개별자의 정신과 신체가 어떻게 세세하고 끊임없이 영향받고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그렇기에 박아름빛이 이번 개인전에서 선보이는 일련의 작업들은 구조 안에서의 양극단과 구조와 개인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오가며 조망한다. 이 속에서 발견되는 것은 지독하리만큼 투명한 사실들과 고질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노동의 역사이지만, 작가는 사회구조 및 체계와 뒤섞여 존재할 수밖에 없는 개개인의 정체성과 내면성이 교묘하게 조정되고 변화해가는 양상을 비추며, 현사회와 인간상의 동시대성 그 자체를 지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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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개인전에서 선보이는 박아름빛의 신작들은 2025년 개인전 《AI 트레이너 김 씨의 삶》 및 메인 작품 〈빵이 버터에게 먹히기 직전에 뭐라고 할까〉와 연속선상에 있다. 전 작업에서 작가는 AI를 학습시키기 위해 AI 트레이너가 마주해야 하는 불편한 질문들 앞에 우리를 세워 놨다. 윤리, 종교, 성적으로 노골적인 질문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AI 트레이너의 혼란스럽고 갈등하는 내면은 이번 전시에서 개인을 너머서는 거시적 관점에서의 구조를 비춰낸다. 작가 작업에서 발견되는 몇몇 단초들, 곧 자본지향적 세계의 불균형성, 거대 산업에 가리워진 노동자, 수작업으로 이뤄지는 첨단 산업, 기형적 노동구조에서 변형되어가는 내면과 감성, 개인의 자발적 기계화 등의 비판적 관점은 다른 누군가에 의해 충분히 반박될 수 있다. 이것은 일부일 뿐이며, 종합되는 과정에서 사라질 것들이고, 거시적 발전에서 불가피한 사항 등 말이다. 더욱이 우리는 AI 산업의 전부를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우리에게 개별자들의 세계를 보여준다. 작가가 수집한 이야기들은 비록 그것이 거대한 덩어리의 아주 작은 일부일지라도, 작가의 직접적 경험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하는 사실주의적 성격으로 인해 부정할 수 없는 ‘발화적 가치’를 가진다. 지극히 부차적인 것들로부터 그 속에 내재한 세계 구성의 지층을 끌어내는 것, 그리하여 개별적인 시선에서 거시적인 구조를 재-감각하고 그 속에 자리한 시대와 인간의 포착을 유도하는 것은 박아름빛 작업의 특징으로 말할 수 있다. 그렇기에 AI 트레이너 개개인의 위치와 상황은 마치 축소된 모델처럼 현 시대를 이루고 있는 구조적 산업과 개인과의 관계망을 반영한다. 작가가 제공하는 역차원의 시선은 세계 구조의 양극지점의 충돌을 야기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한쪽이 승리하거나 다른 쪽이 파괴되는 그러한 충돌이 아니다. 이 충돌은 실재하는 흐름의 파장들을 교차시켜내는 것과 유사하다. 어떤 모양의 파형이 생겨날지 확언할 수 없다. 박아름빛의 작업은 계속해서 반복되고 끝없이 이어지며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세계 형성의 장(field)에서 새로운 시점과 방향성, 다시 말해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바라볼지에 관한 다차원적이고 확장된 방법론을 제안한다. 이 입각점(stand point)이 자기 자신과 타자, 그리고 존재하는 세계의 이해로 이어지며 또다른 소통의 시작지점이 될 수 있음을 기다리며 말이다.

1) “made in – “의 표기가 단순 제조국을 가리키는 안내가 아닌 국가 이미지와 신뢰의 상징이 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2) 박아름빛 영상 작업 〈백-야드(Back-yard)〉 인터뷰 내용 중 인용. (영상 12분 24초 부근)
3) 작가는 이 과정을 수집, 가공 및 정렬, 검수의 세 단계로 구분한다.

박아름빛은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쿤스트아카데미 뒤셀도로프에서 순수미술 전공 디플롬을 취득하고 페터 필터(Peter Piller) 교수로부터 마이스터슐러를 사사 받았다. 개인전 《AI 트레이너 김 씨의 삶》(아트스페이스 보안 2, 서울, 2025), 《From the Long Night》(다-허 쿤스트라움, 베를린, 독일, 2023)을 개최했으며, 《Lines Fiction》(쿤스트라움 베타니엔, 베를린, 독일, 2024), 《Experimental Film and Video 2022》(CICA 뮤지엄, 김포, 2022) 외 다수의 그룹전과 스크리닝에 참여하였다.

아티스트 프롤로그 2026 선정작가 개인전

코끼리의 이는 보여도 씹는 건 보이지 않는다
You See the Tusks, Not the Chewing Teeth

2026. 5. 30. – 7. 11.
아트센터예술의시간 4층

박아름빛 Park Areumbit

주최 | 재단법인 노암
주관 | 아트센터예술의시간
홍보협력 | 주한독일문화원

디렉터 | 주시영
큐레이터 | 김민경
어시스턴트큐레이터 | 이시호
에듀케이터 | 유상아
운영지원 | 설미숙

글 | 김민경
사진촬영 | 신유진
그래픽디자인 | 김박현정

교육프로그램 | 예술모임 #박아름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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