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여물들
Elusive Residue
2026. 3. 21. - 5. 2.
김진기 Kim Jinkey
벌거벗은 생명(Nuda Vita)을 위한 몽타주

주시영(아트센터예술의시간 디렉터)

김진기는 그곳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 스스로를 침입시키는 것으로 장소의 존재론적 의미를 묻는다. 그는 주로 지방의 소도시들을 돌아다니거나 수도권 바깥에서 문을 닫은 대학교들을 찾았다. 무단으로 침입하거나 허가를 얻어 들어간 장소들 -한때 사무실, 댄스장, 강의실로 사용되었던 곳들- 을 걸으며 장면을 포착했을 그의 침입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남겨진 것들’을 대변하여 그가 ‘남기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지 생각한다. 벌거벗은 장소 앞에 선 사람은 벌거벗은 삶을 본다. 아감벤이 말한 헐벗은 삶(nuda vita 누다 비타)1)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 예외상태로서의 폐허는 사회가 죽었다고 판정하고 방치한 상태의 장소다. 김진기가 사진에 담은 잔여물들은 주변을 떠돌며 차마 외면하지 못해 프레임에 담은 것들이다. 그는 예외상태2)로서의 폐허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 스스로 서있는 것으로, 배제된 장소의 고립된 진실을 담아내고자 했다. 그리고, 경계 밖으로 밀려난 상태를 가만히 바라보는 것으로 현재의 정지된 시간을 남겨진 시간의 증거로써 제시하고자 했다. 잔여물들이 모인 버려진 장소가 그곳을 터전으로 삼았던 사람들의 소외된 삶, 흩어진 삶을 은유한다.

현대사회를 움직이는 시스템의 한가운데와 가장자리 사이의 긴장이 불러온 폐허를 화면 안으로 가져온 형상들이 전시 《잔여물들》을 채우고, 작품들은 모두 사라진 것들의 목록이 된다. 자본주의의 속성인 새로운 것을 향한 끝도 없는 추구가 기존의 것을 신속하게 쓰레기3)로 분류하고 폐기한다. 핵심과 기준이 되는 중심에서 멀어지면 쓸모를 다한 것인데, 대개 이런 제거의 과정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천천히 진행되거나 순식간에 벌어진다. 이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휩쓸려 옮겨지고, 손에 쥔 것들을 잃는다. 사실 빼앗기는 것인지 잃는 것인지조차 알지 못한 채 세계 밖으로 떨어져 나가지만, 이들은 정작 자신이 어떤 과정을 통해 지금의 결과에 처했는지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장소들이 제거되고, 그 장소에 거했던 사람들이 제거되고 난 후 폐허 가운데 서게 될 때, 어쩌면 나의 좌표가 중심에 있는지 주변에 있는지, 또는 그 어디에 있는지 알아차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현대의 죽음의 상태는 언제든 버려질 수 있는 사람, ‘잔여가 될 수 있는 상태로 살아가는 삶’을 말한다. 여기서 우리가 던질 수 있는 질문은 ‘누가, 어떤 조건에서, 왜 사라져도 되는 자가 되는가.’이다. 우리는 경제 구조와 노동 시장, 사회 구조의 변화 속에서 모든 인간이 잠재적 잔여물이 될 수 있는 시대를 산다. 지금은 필요 안에 있지만, 언제든 불필요의 영역으로 밀려날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필요 범위 안에서도 보호받을 수 없다는 압박과 불안이 현대사회를 짓누르는 정서의 구조다. 작가는 인간의 실존적 한계 앞에서 일어나는 근본적 불안을 폐허가 된 장소에서 본다. 그는 장소 자체가 불러일으키는 이러한 무력감 앞에서 벌거벗은 생명들을 소환한다. 프레임 밖으로 버려진 것들을 프레임의 중심으로 가져와 중심과 주변의 위계에 관해 질문하는 것이다.

김진기가 찾아가는 장소는 직접 발을 딛고 서 있을 수 있는 실재하는 곳, 주소가 있는 곳들이다. 카메라에 담은 장소가 ‘거기-있었음’에서 시작하는 사실은 그에게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그러나 단지 과거와 현재의 실재에서 머무르지 않는 그의 작업은 사진의 노에마4) 너머, 버려진 장소와 벌거벗은 생명을 연결하는 데 있다. 그의 작업은 길어 올린 장소를 한참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대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응시가 중요한 것은 장소가 갖는 물리적 현실과 시간의 무게를 받아들이는 태도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작업은 사진 위에 회화적 콜라주를 시도하고, 그 작업을 재촬영하고, 그 위에 회화적 개입을 다시 반복 시도하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사진 위 회화적 개입이 서로 엉겨 붙은 형상은 대상과 작가가 서로를 바라본 만큼의 시간이 갖는 밀접한 ‘엉겨 붙음’이다. 한참 바라보며 머물렀던 작가의 시선이 경계를 허문다. 실존적으로 서로를 마주함으로써 자신 안에서 발견된 벌거벗은 생명을 그 장소들에서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장소도 사람처럼 구조와 시스템 안에서 살아나고 죽고, 흥하고 쇠하기를 반복한다. 그가 장소를 사진에 담은 의도가 실존적 좌표로서의 장소를 담는 데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삶을 이어갔던 이 장소들의 과거를 상상해 볼 수 있다. 물리적 공간이자 보편적 구조5)로서의 장소에 특정한 사건들이 이어지고 인간의 이야기와 삶이 모여들어 고유한 의미를 발생하는 장소6)로 변모하는 과정은 인간과 장소가 관계를 맺으므로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적 장소들은 점차 비장소7)로 전환되어 간다. 공항, 호텔, 대형 마트처럼 누구와도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하는 익명성의 공간으로 변신한다. 한때 누군가의 정체성이 담긴 ‘장소’였던 곳이 시스템 밖으로 밀려난 상태의 벌거벗은 잔여물로 고립되어 간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그가 방문한 지방의 폐대학교들을 포함한 버려진 장소들을 보여주는 <left behind> 시리즈와 자동차 추돌 사고에서 시작된 <충돌> 시리즈, 그리고 이전에 선보였던 뒤풀이 연작들과 연결점을 갖는 <불판>을 선보인다. <불판>은 김진기의 이전 작업들과의 맥락을 연결하는 단서가 된다. 회식, 뒤풀이 후의 장면을 담은 시리즈를 통해 김진기는 동시대적 딜레마인 쓰레기더미화 되어가는 문명을 지극히 일상적인 장면으로 보여준 바 있다.8) <충돌>은 작가가 경험한 자동차 사고에서 시작되었는데, 자동차의 물리적 충돌과 화면 속 회화의 충돌이 어지럽게 밀착되어 있다. 그의 작업이 사회적 충돌을 바라보고, 매체적 충돌을 이용하여, 그 틈 사이에서 새로운 감각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할 때, 이 작업은 김진기의 작업방식을 축약적으로 강렬하게 보여준다. 전시장에서 <충돌>은 그런 의미에서 <left behind>를 해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김진기는 사건의 직후를 조명하는 것에서 벌거벗은 장소와 생명의 잔여 상태를 바라보는 것으로 옮겨간다. <left behind> 시리즈는 정말 그곳이 맞는지 그곳처럼 보이는 것인지 헷갈리는 경계와 모호함으로 가득하다. 작업 안에 숨겨진 수많은 레이어와 우연성이 벌거벗은 장소의 과거, 현재, 미래의 겹으로 다가오고, 주변부로 밀려난 벌거벗은 삶들의 현재를 증언하는 듯 보인다. 김진기는 그 주변부에서 그의 작업을 통해 장소의 버려진 실재를 존중하고 있다. 말하자면 예외상태에 있는 벌거벗은 생명들이 사회적 잔여가 된 현재의 상황과 상태를 완전히 가리지 않는 것이다. 그의 회화적 틈이 일종의 정서적 틈으로 작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회화는 사진을 압도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사진이 박제한 죽은 시간을 현재의 살아있는 사유로 소환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작업이 추상도 구상도 아니며 회화도 사진도 아닌, 규정할 수 없는 어떤 것이라고 한다면, 일종의 개념적 작업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김진기의 작업 방식은 몽타주의 원리와 닮아 있다. 몽타주 Montage의 어원 ‘Monter’는 본래 ‘벽돌을 쌓다’는 건축적 용어다. 콜라주 Collage가 ‘풀로 붙이다-Coller’에서 나온 것처럼, 두 개념 모두 이질적인 이미지나 요소들을 결합하는 과정을 말하지만, 그 목적은 다르다. 콜라주가 충돌과 대립에 머문다면, 몽타주는 그 충돌을 통해 일관된 의미를 조립하는 데 관심을 둔다. 다시 말해 몽타주에는 방향이 있고, 그 방향은 언제나 새로운 이미지, 새로운 의미의 생성을 향한다. 그의 작업이 중심-주변, 내부-외부, 전체-부분, 내용-형식, 생성-소멸, 순환-정지의 관계 안에서 확장할 수 있는 여지는 이 관계가 단순한 대립이 아닌 제3의 의미와 감각으로 나아가는 길을 찾은 데 있다. 변증법은 종합으로 이어지는 상승의 운동을 통해 정과 반의 모순을 초월한다. 서로 대립하는 두 요소의 충돌은 단순히 A와 B를 합한 답을 도출하는 것이 아닌 제3의 감각을 창출하는데 있기 때문에 김진기의 사진-회화가 충돌하는 지점과 그로 인해 생긴 간극, 그리고 작가의 반복적 개입이 나아가는 과정은 중요한 것이다. 고정된 상태의 장소를 사진에 담고, 이질적인 회화적 요소를 개입시켜 그 갈등을 통해 새로운 질서를 제시하는 과정에서 그의 작업은 변증법적 몽타주9)의 특성을 향한다. 두 컷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기 위한 목적으로 시도된 이 편집 기법은 단순히 A+B가 아닌, A☓B의 원리로 나아가 추상적 개념으로서의 C를 도출한다. 재현적이고 구상적인 사진 위에 회화적 흔적을 적용하는 것으로 김진기는 현실의 질서로 인해 버려진 벌거벗은 장소에 개입하고, 잔여물들을 방치한 체계 자체에 균열을 가한다. 그가 스스로도 아직 규정할 수 없다고 말한 그의 작품들은 어쩌면 변증법적 몽타주로 쌓아 올린 새로운 시각적 경험, 즉 ‘사진적 회화’로 확장할 가능성을 충분히 확보한 것이다.

대립을 타개하는 김진기의 작업 방식은 대립 항들 – 중심-주변, 내부-외부, 전체-부분, 내용-형식, 생성-소멸, 순환-정지 – 의 정-반 대립 한가운데 스스로를 침입자로 세워두는 것이다. 스스로를 하나의 보이지 않는 맹아로 그 장소에 심는 행위, 그것이 침입자로서 벌거벗은 장소에 서고, 장소의 이미지를 길어와 한참을 바라보며 세상에 내놓는 일이 된 것이다. 이미 벌거벗은 생명으로의 동질감이 김진기와 우리 사이를 연결한다. 생명을 호명하고, 소멸해 가는 이미지의 잔해 속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생성의 감각을 지키고자 하는 그의 시도는 벌거벗은 장소에 자신을 세워두는 일이자 폐허 속에서도 불리워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들에 대한 끈질긴 증언이 될 것이다.

1) 조르조 아감벤, 『호모 사케르』, 새물결, 2008
아감벤은 헐벗은 삶(Nuda Vita)을 정치적, 법적 권리가 박탈된 채 오직 생물학적 생존만이 남겨진 삶의 상태로 정의한다. 호모 사케르(Homo Sacer)는 법의 보호 밖에 놓인 존재로 죽여도 되는 자이자 제의적으로 희생될 수는 없는 모순적 존재다.
2) 아감벤의 예외상태는 주권 권력이 법의 정상적 작동을 정지시키는 상태를 말한다.
3) 지그문트 바우만, 『쓰레기가 되는 삶들』, 새물결, 2008
4) 롤랑바르트가 『밝은 방』에서 제시한 ‘노에마(Noema)’는 사진을 본질적 메시지를 ‘그것은-있었다That-has-been)’라는 시간적 확신으로 정의한 개념이다. 사진은 과거의 실재를 지시하지만, 동시에 그 실재의 부재를 증언한다.
5) 토포스 topos: 그리스어에 뿌리를 둔 토포스는 객관적이고 지리적인 ‘터’를 의미하며, 물리적 환경이자 보편적 구조로서의 공간적 배경을 말한다.
6) 로쿠스 locus: 라틴어에 기원을 둔 로쿠스는 인간의 행위, 역사, 기억이 개입되어 고유한 의미가 발생한 지점을 말한다. 토포스가 존재하는 땅이라면, 로쿠스는 사건과 궤적이 모이는 구체적 좌표점이다.
7) 마르크 오제의 『비장소』, 아카넷, 2017
8) 전시 《팔색거사》, OCI미술관, 2021를 위한 비평, 「시대를 분별하는 보편적 감수성」, 심상용
9)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Sergei M. Eisenstein 1898-1948)이 고안한 변증법적 몽타주(Dialectical Montage)는 대립하는 두 쇼트를 충돌시켜 관객의 의식 안에서 제3의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영화 편집 기법이다. 이 기법은 당시 소비에트의 사회정치적 맥락에서 이념적 선전 도구로 활용되었다. 김진기의 작업에서 이 개념은 매체적 충돌로 확장된다. 사진(기록)과 회화(개입)의 충돌은 어느 한쪽으로 수렴하지 않고, 그 긴장의 틈에서 제3의 감각-정(사진), 반(회화), 합(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생성한다.

김진기는 성균관대학교 미술학과 및 영상학과에서 학사학위를 취득하고, 동 대학원에서 서양화전공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멜로드라마(Melodrama)》(영은미술관, 경기, 2022),  《Leftover : 끌리는 뒤태》(OCI미술관, 서울, 2010),  《모듬회식》(자하미술관, 서울, 2009)에서 개인전을 가졌고, 《New Figure》(관훈갤러리, 서울, 2026), 《2024 경기 시각예술 성과발표전: 궤적을 연결하는 점들》(고양시립아람미술관, 경기, 2024), 《and then》(자하미술관, 서울, 2018) 외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하였다. 현재 OCI미술관 R1211(서울, 2026) 레지던시 입주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잔여물들 Elusive Residue

2026. 3. 21. – 5. 2.
아트센터예술의시간 2층

김진기 Kim Jinkey

주최 | 재단법인 노암
주관 | 아트센터예술의시간

디렉터 | 주시영
큐레이터 | 김민경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 이시호
에듀케이터 | 유상아
운영지원 | 설미숙

글 | 주시영
사진촬영 | 신유진
그래픽디자인 | 김박현정
공간설치 | I&F
작품설치 | 아트이스트
전시설치도움 | 김규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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