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평한 지구를 접는 방법
How to Fold a Flat Earth
2026. 3. 21. - 5. 2.
박소연 Park So Yeon
물질-세계-조각가

김민경(아트센터예술의시간 큐레이터)

알루미늄판을 주재료로 삼는 박소연의 조각은 명확한 형태가 없거나 묘사가 불가한 형상으로 귀결되곤 한다. 이것은 작업의 방법적 특이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작가는 주로 실재하는 대상, 장소, 공간에 알루미늄판을 놓고 두드리는 방식을 통해 조각을 구현한다. 작가는 구체적인 대상이나 추상적 개념의 최종적 형태를 구상한 뒤, 물질적 소재로 재현해 가는 방식이 아닌 대상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그곳이 지니고 있던 공간성을 조각의 형태로 옮겨오는 방식을 취한다. 더욱이 판을 고정하지 않는 자유로운 두드림의 조형 방식은 공간의 여러 부분을 중첩되게 하기에, 혼란스러운 형상으로 나타나거나, 찢기고 파손된 부분을 남기기도 한다. 그렇다면 작가의 조각은 ‘어디를’ 담고 있는가? 작가의 시선은 주로 ‘제거된’, ‘결함의’, ‘임시적’ 상태를 떠올리게 하는 공간을 향해 왔다. 공사를 위해 잠시 열어둔 배수구, 파헤쳐진 땅 아래 드러난 배관, 용도를 잃어버린 채 방치된 지하공간과 같은 곳은 지속적으로 작가의 관심을 끌어왔다. 우리의 문명과 도시는 마치 결벽증에 걸린 완벽주의자처럼 자신의 결점과 오류를 빠르게 복구하고 지워버린다. 작가는 매끈한 도시 얼굴(facade)의 대척점에 존재하는 임시적인 공간들을 ‘미지의 영역’이라 말한다. 그리고 작가는 이 시공간을 물질적 조각으로 포착하고자 한다. 박소연의 작업을 끌고 가는 것은 하나의 의구심인데, 작가는 반복되는 매일의 경험이 선사하는 익숙함이 관습과 신념, 나아가 믿음으로 변모하는 지점을 주목한다. 그리하여 새로운 시스템에 안착하고, 거대한 개념의 구조에 체화된 감각과 지각의 현상들이 깨어지는 순간을 탐색한다.
표준 규격에 맞춰진 몸의 감각이 전혀 다른 환경에 놓이거나, 진리라 의심치 않던 세계관을 뒤엎는 새로운 패러다임(paradigm)을 맞닥뜨릴 때, 때로 감당하기 버거운 불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흄(David Hume)의 사유를 따라가 보면 우리의 인식과 관념이 단지 인상(impression)의 다발일 뿐이며, 반복되는 기억의 축적이 얼마나 그럴듯한 인과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관찰과 탐구, 객관성으로 무장한 과학의 발전이 어떤 연속적이고 점진적인 흐름이 아닌 공약불가한(incommensurability) 대립으로 인한 파괴적 전복으로 반복되어 왔음을 말한 쿤(Thomas S. Kuhn)의 발견은 과연 절대적 진리 정립이 가능할지에 관해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어쩌면 우리의 매일이 얄팍한 체계로 쌓인 두터운 신념으로 굴러가고 있을지 모른다는 박소연의 시선은 우리의 일상에서 오류로 치부되는 것들을 붙잡는 행위로 연결된다.

박소연은 첫 개인전 《평평한 지구를 접는 방법》에서 그간 지속해 온 관심사인 공간의 영역을 디지털 세계로 적극 확장해 선보인다. 인공지능, 로봇, 빅데이터를 위시한 오늘날의 디지털 문명은 강력한 패러다임을 구축하고 있다. 작가는 현실과 가상의 세계가 혼재되어 있는 현대의 풍경에서 관찰되는 몇 가지 오류에 주목하는데, 첫째는 편의와 효율을 위해 도심 여기저기 세워진 디지털 화면(facade)에서 발견되는 색 왜곡, 깨진 픽셀, 플리커 등의 크고 작은 결함의 흔적이고, 둘째는 세계를 이루는 모든 물질적 대상이 납작한 화면의 데이터로 변환됨에 따라 발생하는 감각의 일률화이다. 여기서 우리는 작가가 지적하는 오류들이 디지털 세계가 구축하고 있는 견고한 신화에 미세한 스크래치라도 남길 수 있을지에 관한 의문을 품게 된다. 그러나 작가가 이번 전시에 끌어오고 있는 개념인 “평평함”은 고도로 발달한 문명시대의 감각적 풍경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평평함”을 맹신하고 의존하는 현대인의 모습에 대한 비유이기도 하다. 더욱이 이번 전시명의 일부인 “평평한 지구”는 하나의 흥미로운 사실을 상기하게 한다. 한때 지구가 평평했다고 믿던 시대가 있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관측기기나 과학적 탐구의 방법론이 발달하지 않던 고대의 인간들은 매일 평평한 땅만을 보았고,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다. 박소연은 오늘날 다시 한번 평평해진 세계를 바라본다.
사실 평평함, 납작한, 매끈함 등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설명하는 시선이 새롭다고 말하긴 어렵다. 이미 우리는 디지털 문화와 산업, 그리고 플랫한 감각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여러 동시대 예술을 알고 있다. 디지털의 요소나 방법이 작품의 재료가 되기도 하며, 아예 가상 속에 새로운 시공간이 구현되기도 한다. 박소연 또한 예술가로서 디지털 세계와 함께하지만, 작가는 전통적 조각이 갖는 근원적 특성인 ‘물질’과 ‘공간’을 점유하는 성격을 더욱 극대화한다는 점에서 구분된다. 디지털 세계의 오류는 시스템의 체계에서 어긋나버린 입자로 인한 균열을 보여주며 텅 비거나 복잡한 화면의 공간성을 내비치는데, 작가는 이 오류의 공간을 물질로 고정시킴으로써 현대의 패러다임이 감추고 싶어하는 것을 박제하고, 절대성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질문한다. 그런데, 가상을 속성으로 두고 있는 디지털 세계를 형상화하려는 작가의 시도는 실재하는 공간과의 직접적 접촉으로 진행해 온 이전의 작업 범위를 넘어서 있다. 여기서 작가는 디지털과 조각 사이에 특정한 물질세계를 설정함으로써 디지털 세계가 노출한 임시적 균열의 공간을 조각으로 끌어올 계기를 마련한다. 작가의 장치는 우리를 둘러싼 모든 세계의 존재 방식에서 물질성을 발견하는 작가의 시선에 의해 가능해진다. 그리고 이 거대한 물질세계는 거친 모래만이 가득한 사막으로 드러난다. 작가는 극한의 사막 환경에서 인간의 모든 감각과 문명의 조건을 초월하는 공간을 경험했다 말한다. 매 순간 지형과 경계가 변화하는 땅 위에선 그 어떤 인간적 도구와 측량, 수치화도 불가했다. 도시의 시선에서 사막을 이루는 모든 현상과 요소는 정리되어야 할 오류들일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경험되는 공포와 당혹감은 해방과 자유로움, 초월적 생성의 가능성을 동반한다.

단 3점으로 전시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작품 〈Flat Hunter〉는 언뜻 누군가 던져둔 구겨진 종이처럼 보이기에, 거대한 크기가 갖는 존재감은 가볍고 유동적인 감각을 동시에 자아내며, 독특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공사를 위해 뒤집은 땅의 흙더미에 알루미늄판을 두고 그 언덕이 평평해질 때까지 굴삭기의 힘으로 내리쳐가며 만든 작품이다. 그렇기에 조각은 모래가 빠져나간 흔적처럼 존재한다. 반짝이는 알루미늄의 화려함을 뒤로한 채 조각의 외형을 천천히 살펴보면, 우리는 그 표면에서 날 선 모양으로 접힌 부분, 그리고 뚫리거나 긁힌 무수한 스크래치를 발견하게 된다. 이 흔적들은 애초의 모래언덕이 어떤 형태였을지, 그리고 언덕을 평평하게 하기 위해 얼마만큼의 힘이 가해졌는지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Flat Hunter〉의 제작에서 작가는 산업용 규격에서 가장 큰 사이즈의 알루미늄판을, 그리고 기존에 사용하던 망치가 아닌 인간의 힘을 능가하는 굴삭기의 힘을 빌려온다. 작가의 굴삭기는 문명을 창출하는 인간의 행위를 모방하듯 눈 앞의 거친 땅을 평평하게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 생성물인 알루미늄 조각을 오류의 덩어리로 만들어 버린다.
빠져나간 모래는 또다른 형상으로 전시장에 등장한다. 기다란 직사각형의 반짝이는 푸른 모래는 전시장 바닥에 납작하게 설치되어 있다. 작품 〈Sand Screen〉은 강렬한 푸른색으로 우리의 시선을 끈다. 작업의 재료인 모래 알맹이들은 오류를 상징하는 디지털 화면의 푸른색(Digital Blue)을 모방한다. 이들은 전시장 곳곳에서 튀어나와 바닥의 혼란과 불안정성을 증가시킨다. 작업의 개념은 〈Check Input Signal〉에서 보다 압축적으로 드러나는데, 바닥에 정직하게 놓인, 변형되지 않은 원형의 알루미늄판은 그야말로 평평한 화면과 같이 존재한다. 화면 위로 발생한 푸른 모래는 화면의 온전함을 방해하는 요소로 자리한다. 작가는 오류로 분류되는 디지털의 입자와 사막에서 경험했던 모래 알맹이를 충돌시켜 오류가 가질 수 있는 개념을 흐트려낸다. 결국 모래의 자유로운 속성은 약간의 압력이나 힘에 의해서도 전혀 다른 형상으로 해체되어 갈 것임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가상의 디지털 세계와 모래사막을 개념 및 감각적으로 연결하는 시도를 보여준다. 두 세계를 이루고 있는 입자가 공유하는 속성을 대응시켜 물질과 가상세계가 교차하는 지점 위에 작품을 구현한다. 더욱이 원초적 물질인 모래, 땅의 개념을 끌어오는 작가의 설정은 우리의 사유를 근원적인 범주로 확장시킨다. 모든 문명이 땅을 평평하게 함으로써 시작되기에, 모래로 대변될 수 있는 자연은 문명이 극복해야 할 태초의 조건이었다. 그러나 박소연은 오류를 제거하기 위해 땅을 내리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또 다른 오류들을 보여주고, 고운 모래 입자를 부단히, 정갈하게 정리해 가지만 그것이 자유로운 변화의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음을 제시함으로써 문명이 추구하는 견고함과 그것을 초월하는 힘이 공존하는 기묘한 층위의 풍경을 제시한다. 박소연의 작업은 ‘물질’을 중심으로 가상과 현실, 완전성과 오류의 개념을 동시적으로 가시화한다. 평평하고 매끈한 세계의 신념이 깨어지는 지점은 실패가 아닌 새로운 감각과 사유의 발생 가능성으로 나아간다.

박소연은 평평한 지구를 접는 것에 성공할 수 있을까? ‘물질’, ‘세계’, ‘조각가 정체성’은 박소연의 작업을 이루고 있는 큰 지반에 해당한다. 작가가 바라보는 세계는 생동하는 물질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이 물질의 세계는 충돌과 융합, 해체를 반복하기에 변화와 생성의 가능성으로 존재한다. 작가는 자신이 바라본 세계를 또다른 물질의 언어로 조각해 간다. 도시 문명의 완벽한 얼굴이 아닌 그 이면의 어긋나고 해체되며 불완전한 영역을 탐색하는 박소연의 조각은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음을 제시하는 주름, 틈, 균열의 공간을 접어갈 것이다.

박소연은 성신여자대학교 조소과에서 학사학위를 취득하고, 동 대학원 조소과에 재학 중이다. 《가난한 자들(The Poor)》(뮤지엄헤드, 서울, 2025), 《WITNESS X》(Kulturpalast Wedding International, 베를린, 독일, 2025), 《집(ZIP)》(아르코미술관, 서울, 2024) 등의 그룹전에 참여하였다.

아티스트 프롤로그 2026 선정작가 개인전

평평한 지구를 접는 방법 How to Fold a Flat Earth

2026. 3. 21. – 5. 2.
아트센터예술의시간 4층

박소연 Park So Yeon

주최 | 재단법인 노암
주관 | 아트센터예술의시간

디렉터 | 주시영
큐레이터 | 김민경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 이시호
에듀케이터 | 유상아
운영지원 | 설미숙

글 | 김민경
사진촬영 | 신유진
그래픽디자인 | 김박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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