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전하는 세계
Spiraling World
2026. 10. 15. - 12. 5.
김세진 Kim Sejin
의인화된 세계

주시영(아트센터예술의시간 디렉터)

김세진이 이번 작업을 시작하게 된 기점을 잊지 않기 위해 그려왔던 그림들1)은 인간이 세기를 거쳐 구축해 온 문명의 기반, 노동하는 인간의 한 장면–먹을 양식, 양식을 제조하는 공정, 그 일을 하는 인간–이다. 근대 이후 노동하는 인간에 대한 성찰은 인간의 분업화, 주로 손으로 하는 작업들을 세분화하고 전문화하는 과정을 반영하며, 생산과 효용성을 위한 존재로서 인간의 가치를 질문하게 했다. 기술의 발달은 인간의 기능을 세분화하여 확장하려는 지속적인 시도였으며, 신체의 각 기능을 대체하기 위해 손과 다리, 시력과 청력, 기억과 연산을 대신하는 기계를 생산했다. 문명이 인간의 생물학적 취약성과 결손을 보완하기 위해 발명한 거대한 보장구라는 통찰, 즉 ‘인간은 일종의 보철의 신이 되었다.’2)라는 말은 김세진이 〈의인화〉 안에 텍스트로 명시한 ‘거인의 팔다리를 얻은 우리’, ‘이해할 수 없는 육체를 대신하는 기계 질서가 건설하는 세계’와 연결된다. 신체의 취약함을 끝없이 보완하고 싶은 인간과 기술 발전의 조합은 점차 인간의 신체가 갖는 고유한 기능으로부터 인간 자체를 분리시켰다. 기계와 인간이 서로를 보완하는 사이, 기술은 인간의 사고를 대신하고, 감각을 대체하며, 판단을 위임받는 자리에 섰다. 그리고 이제 기술이 이끄는 새로운 문명으로의 진입 앞에 인간을 세운다.

〈의인화〉는 중앙보훈병원 보장구센터의 의지(義肢) 제작 과정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로 《회전하는 세계》의 중심에 있다. 의인화(義人化)의 한자 표기가 말해주듯 의지(義肢) 장착을 통해 잃었던 신체의 기능을 되찾는 과정은 분리되었던 신체를 기술로 보완하는 보철의 과정이다. 신체의 본래 기능을 가능하게 하는 보장구 센터의 현장은 한자어 의(義)가 갖는 ‘의롭다’, ‘바르다’의 실현과도 연결된다. 기술과 인간이 서로를 보완하는 과정은 결국 기계와 인간의 결합의 과정이다. 절단부를 측정하고 3D 스캐너로 스캔 후, 환부와 의지를 연결하는 소켓과 실리콘 라이너를 정교하게 제작한다. 무게중심과 길이,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조립하고 정렬하는 과정을 거치면, 보행 훈련을 한다. 이렇게 인간은 의지 장착을 통해 얻은 변화된 신체를 움직여 다시 세계 안으로 들어가, 그 안에서 새로운 조건을 맞이한다. 의지와 함께 재구성된 삶의 조건에 적응해 가는 인간의 모습은 우리의 현재이고 미래다. 〈의인화〉의 영문 표제 ‘Prosopopoeia’는 부재하거나 말할 수 없는 존재, 사물이나 추상적 개념에 목소리를 부여하는 수사학적 의미를 가진 단어다. 작가는 ‘보장구센터’라는 공간 자체가 구조적 내러티브를 통해 발언하도록 장소에 서사적 주체성을 부여했다. 이를 통해 보장구센터 자체가 의인화(擬人化)된다. 작가로부터 인간의 목소리를 부여받은 ‘보장구센터’는 이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공정, 그 과정에서 노동하는 인간, 보철의 과정을 경험하는 인간, 그리고 기술의 개입에 관해 스스로 말하고 있다.

〈양성석고〉 시리즈는 이 ‘의인화’ 과정에서 실제로 사용되고 남겨진 물질이다. 신체가 데이터화되고 남은 잔해이자, 물질이 비물질화된 의지 제작 과정의 흔적이기도 하다. 절단된 신체가 거기 있었다는 흔적은 인간 문명에서 기술문명으로 가는 길 위의 지표(index)가 된다. 작가는 완전히 제거되지 않고 남은 잔해를 마치 유물처럼, 청산되지 않은 물질적 잉여로 전시장에 남긴다. 인간의 고통과 상실의 물리적 흔적으로서의 파편은 신체에서 데이터로, 그리고 다시 새로운 신체로 이어지는 공정이 만드는 회전의 궤적을 보여준다. 〈양성석고〉와 함께 전시된 영상 작업 〈석고 Gypsum〉은 관람자를 물질의 원형으로 데려가, 〈양성석고〉의 물질적 기원을 상상하게 한다. 작가는 이 광물을 VFX(시각효과)를 통한 AI 영상으로 제작했으며, 인공적인 광물 이미지가 허공을 회전하게 하는 것으로 물질과 비물질에 대한 간극을 감각할 수 있도록 놓아둔다.

보장구 센터에서 상실된 신체를 보완하는 미시적 보철은 4층의 키네틱 회전 장치와 디지털 데이터망으로 연결되면서 도시와 인간을 감싸는 거시적 보철로 이어진다. 〈드라이빙 매직-아워〉에 이르러, 물질의 비물질화를 지켜보는 관찰자 시점은 인간이 구축한 문명의 상징인 도시 전체로 확장된다. 〈의인화〉가 환자를 촬영하는 카메라와 작가의 현장 촬영 카메라를 화면에 그대로 노출하며 서사 시점을 확보했듯이, ‘시점’의 문제는 〈드라이빙 매직-아워〉에서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두 작품 모두 ‘누구의 눈으로 보고 있는가’를 숨기지 않는다. 이것은 김세진의 전작들에서 꾸준히 발견할 수 있는 장치다. ‘보는 장치’라는 측면에 있어서 드론, 조준 표시, 픽셀, 화면비율 등으로 관람자가 관찰자이자 목격자로서 위치할 수 있었던 이전의 시각 장치 노출 방식이 두 작업에서도 유사하게 드러난다. 〈드라이빙 매직-아워〉의 ‘자율주행 시점’은 센서의 작동이 계산된 정보들을 읽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이 시점의 구현은 라이다(LiDAR)3)가 보는 방식을 따라 도시를 포인트 클라우드로 재구성한 세계를 통과하는 경로다. 세계는 먼저 장치에 의해 측정되고, 점과 좌표로 환산된 뒤에 우리 앞에 나타난다. 하이데거가 몰아세움(Ge-stell)4)이라 부른 기술의 방식, 곧 모든 것을 계산 가능한 것으로 환산하려는 시도는 이 길 위에서 풍경이 된다.

자율주행의 계산된 시점과 운전자의 시선,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인간의 눈은 관찰과 목격의 경계를 넘나들며 움직인다. 시점의 이동은 일몰 후 등장하는 생명체들과도 연관이 있다. 달리던 도로 위에서 개구리 떼와 대치했던 작가의 경험은, 영상 속 헤드라이트와 이를 응시하는 관람자의 시선 사이에서 또 다른 대치로 되살아난다. 김세진은 전작 〈전령(들)〉5)을 통해 거스를 수 없는 구조 안에서 벌어지는 선택과 그 선택이 가져오는 새로운 조건에 관해 아렌트의 사유를 경유하여 질문한 바 있다.6) 〈전령(들)〉에서 한 걸음 나아가, 이번 전시에서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와 관람자의 눈을 마주하게 하여 구조적 한계 앞에서도 유효한 인간의 선택이 가능한지 묻는다. 이때 자율주행이 가리키는 ‘운전자 없음’은 단순히 물리적 운전자의 부재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시스템을 통제할 주체성을 상실한 채, 기술의 가속에 몸을 맡긴 인간의 자리를 되묻는 질문이 된다. 바깥에서 시스템을 관찰하던 외부자로서의 관람자는 〈그리드〉에 반사되는 순간, 시스템의 부품으로 조각난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한다. 분절된 이미지가 순환 구조 속에 편입되는 걸 목격하는 이 과정은 광학적, 신체적으로 일어난다. 보장구 센터의 석고와 데이터화된 신체를 마주할 때 관람자는 이미 기술문명이 인간의 몸과 지각을 형성해 온 역사(스마트폰, 카메라, CCTV, 스크린에 노출된 경험들) 안에서 작품을 보고 있다. 관람자는 작품을 만나기 이전부터 이미 이 작품이 다루는 시스템의 산물인 것이다. 김세진이 주목하는 회전은 관념적 역사의 순환이 아니라 매 순간 그것을 보는 이의 몸을 통과해 완성되는 순환이다.

〈실버 스펙타클〉은 프락시노스코프(Praxinoscope)의 작동 방식에서 착안한 키네틱 작업으로, 다면 거울로 이루어진 모듈을 쌓아 올려 회전시킴으로써 반사된 상들이 연속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구조다. 이 작품에 이르러 보철의 방향이 뒤집힌다. 〈의인화〉가 기계로 몸의 결손을 메웠다면, 이곳에서는 회전하는 거울 조각들이 관람자의 몸을 끌어들여 하나의 이미지를 만든다. 영화가 등장하기 이전인 19세기 후반, 오락의 한 형태로 사용되었던 이 광학 장치는 관람자를 구조의 일부로 편입시키는 도구가 된다. 거울은 빛을 되비추며 관람자 자신의 자리를 가늠하게 하지만, 그 자리는 이미 회전의 일부다. 김세진이 〈실버 스펙타클〉에서 말하는 ‘스펙타클’은 드보르7)의 해석에 기인한다. 일종의 ‘자본주의적 존재 양식’이라고 말할 수 있는 스펙타클은 단순한 이미지들의 집합이 아니라, 이미지들에 의해 연결된 사람들 사이의 관계 자체를 말한다. 자본주의가 자본으로 모든 것을 흡수하듯 스펙타클도 자본주의 시스템 안의 개인들을 이미지로 통합해 버린다. 다만, 이때의 통합은 개인의 삶의 온전한 통합이 아닌, 분리되고 조각난 삶을 단순하게 뭉쳐버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작가는 수직으로 길게 쌓아 올린 〈실버 스펙타클〉의 군집과 그로부터 분리되어 작게 회전하는 또 다른 조각 사이에 물리적 거리를 둔다. 이를 통해 시스템의 궤도와 그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개인의 고유한 자리를 가늠하게 하는 틈을 열어둔다. 

2층에서 4층으로 연결되는 작업의 동선, 〈의인화〉, 〈양성석고〉, 〈석고 Gypsum〉, 〈드라이빙 매직-아워〉, 〈그리드〉, 〈실버 스펙타클〉로 이어지는 순환은, 김세진이 지난 수십년간 지속해 온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을 바라보는 오랜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시스템 자체의 견고함이나 거대함을 재현하기보다는 시스템과 개인의 어긋난 틈을 찾는 작가의 시선은, 한 공간으로서의 《회전하는 세계》와 그 안에 서 있는 관람자의 유기적 작동을 향하고 있다. 김세진은 《회전하는 세계》를 통해 각기 다른 소재로 반복되고 축적되면서 집요하게 질문해 온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의인화〉를 중심으로 전시 전반에 사용한 노란색은 이러한 문제의식에 관한 일종의 경종이자 정지와 진행 사이 인간의 판단과 선택 앞, 유보의 의미를 내포한다.

다시 드로잉으로 돌아와, 식물 생장의 궤적을 담은 〈회전하는 세계〉 앞에 선다. 식물 고유의 자율회전운동을 시각화한 이 드로잉은 정해진 중심축을 지키면서도, 그 안에서 끊임없이 방향을 탐색하고 선택해 나가는 과정을 드러낸다. 자연의 질서는 이 질서 안에 존재하는 생명의 성장을 통해 보여진다. 보이는 성장의 결과는 보이지 않는 기저의 질서를 드러낸다. 이루고자 하는 문명을 끝끝내 발전시키는 인간은 자신을 확장시켜 비대하게 만들고, 이제는 기술을 통해 인간 한계를 극복하는 미래를 바라본다. 인간을 닮은 기계 생산을 꿈꾸면서 정작 인간은 기계화 되어가는 문명의 질주 앞에서, 과연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질서는 무엇인지, 그리고 인간은 어떻게 인간 고유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물음은 거듭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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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회전하는 세계〉(모눈종이 위에 콜라주 드로잉)는 총 네 점으로, 세 점의 작업은 먹을 양식으로서의 빵, 양식을 제조하는 공정으로서의 회전하는 기계 속 빵 반죽, 그리고 그 일을 하는 노동자로서의 인간을 그렸다. 그리고, 마지막 한 점은 자연 질서 속 식물생장의 궤적을 그린 작업이다.
2) 지그문트 프로이트, 『문명 속의 불만』, 열린책들, 2020
3) LiDAR(Light Detection and Ranging): 레이저 빛을 쏘아 물체에 부딪혀 돌아오는 시간을 재고, 그로부터 물체까지의 거리를 측정하는 센서. 이렇게 얻은 점이 장치에 따라 초당 수십만에서 수백만 개 모이면, 도로, 건물, 사람의 윤곽이 점의 무리, 곧 포인트클라우드(point cloud)로 나타난다.
4) 하이데거에게 몰아세움(Ge-stell)은 현대 기술의 본질을 가리키는 말로, 존재하는 모든 것을 자원으로 불러 세워 계산 가능하고 처리 가능한 것으로 드러내는 방식을 뜻한다. 마르틴 하이데거, 『강연과 논문』, 이학사, 2008
5) 김세진, 〈전령(들)〉, 2019, OLED·LED 모니터에 2채널 4K 비디오, 스테레오 사운드, LED 조명, 각 52초 / 1분 25초, 반복재생
6) 김세진은 〈전령(들)〉(2019)에서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에서 발췌한 문장들을 사용했다.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한길사, 2019
7) 기 드보르, 『스펙타클의 사회』, 울력, 2014

김세진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 영상대학원 영상미디어과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하고 영국 슬레이드 미술대학(UCL)에서 미디어아트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태양 아래 걷다》(송은아트스페이스, 서울, 2019), 《우연의 연대기》(미디어극장 아이공, 서울, 2015), 《열망으로의 접근》(문화역서울 284, 서울, 2014)이 있고, 《기술의 저변: 경계에 선 장면들》(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서울, 2026), 《2024 아시아 필름앤비디오아트포럼》(국립현대미술관 서울 MMCA영상관, 서울, 2024) 외 다수의 그룹전과 스크리닝에 참여하였다. 델피나 파운데이션 레지던시 프로그램(런던, 2020), 남극세종과학기지(남극, 2018), 서울문화재단 금천예술공장(2014-15) 등의 국내외 레지던시 입주작가로 활동하였고, 송은미술대상(2017), 박건희 문화재단 제 4회 다음작가상(2005), 광주비엔날레 유네스코 미술진흥상(2002) 등을 수상하였다.

회전하는 세계 Spiraling World

2026. 10. 15. – 12. 5.
아트센터예술의시간

김세진 Kim Sejin

*전시 오프닝 10. 15.(목) 16:00-18:00

주최 | 재단법인 노암
주관 | 아트센터예술의시간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협력 | 중앙보훈병원 보장구센터

디렉터 | 주시영
큐레이터 | 김민경
어시스턴트큐레이터 | 이시호
어시스턴트에듀케이터 | 조유진
운영지원 | 설미숙

글 | 문혜진, 주시영
사진촬영 | 김재범
그래픽디자인 | 배자은
공간조성 | I&F
작품설치 | 아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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