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경(아트센터예술의시간 큐레이터)
그런 감정이 있다고 한다.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연유인지 그립고, 애틋하며, 부재함의 우울감을 동반하는 그러한 감정 말이다.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이야기들, 시간의 흔적을 간직한 물건의 독특한 미감적 분위기, 영화나 문학에서 그려지는 특정한 시대적 분위기를 그리워하는 감정들은 소유할 수 없기에 동경과 결핍의 기분을 동시에 자극한다. 이러한 정서적 심상은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이들 내면에 자리하여, 추상적이고도 보편적인 이상향의 모습으로 뿌리 깊게 굳어져 간다. 가질 수 없는 대상에 투영되는 감정들은 필연적으로 이상적인 것을 향한 갈망과 닿아 있으며, 현실과의 괴리에서 비롯되는 결핍을 동반한다. 권민철 개인전 《완벽한 날씨》는 날씨, 그리고 완벽이라는 개념을 다룬다. 여기서 날씨는 우리를 둘러싼 물질적인 환경의 상태이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완벽한 날씨”가 가져오는 심상을 그 중심에 둔다. 권민철은 일상에서 때때로 마주하는 맑고 화창한 날씨, 혹은 날씨에 의해 순간적으로 아름답게 느껴지는 풍광 속에서 경험했던 이질적인 기분을 조명한다. 이는 완벽한 날씨에 동화되지 못하는 기분으로, ‘완벽함’, ‘온전함’과 같은 상태에서 배제되거나 소외되는 느낌으로 설명된다. 그렇기에 작가에게서 날씨는 단순히 기후적인 물질의 조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완벽한 삶’이나 ‘완전한 관계’와 같이 인간적인 시선에서 개인이 연결되어 있는 사회적 환경이나 내적인 상태를 포괄한다.
권민철의 작업적 관심사는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거나 있을 법한 보편적 정서를 중심으로 발생한다. 작가는 그리움, 사랑, 평안, 행복과 같은 감성적 느낌을 중심으로 이를 불러일으키는 일상의 순간과 대상을 조형 작품으로 구현해 간다. 그렇지만 관념으로만 존재하는 대상을 시대를 막론한 모든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구체적 물질로 재현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미술은 오랜 시간 자연의 모방으로 설명되어 왔지만, 미술의 탄생 이후 유사한 시간 동안 알레고리(allegory)와 같이, 인간이 품고 있는 추상적인 관념이나 감정의 재현을 또한 시도해 왔다. 알레고리가 상징, 의인화, 도상 등을 통해 하나의 재현을 선보이고, 이로써 전체적인 맥락과 해석의 확장성을 발생시켜 간다면, 권민철의 작업은 이미 관습적으로 굳어진 관념들과 이상화되어 있는 정서를 중심으로, 무엇이 그것을 바로 그것으로 인식하고 느끼며, 바라보게 하는가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작가의 물음은 대상을 둘러싸고 있는 속성들을 분석하고 분류해 가는, 해부학적 시선으로 이어지며, 이상화된 감성이나 개념을 와해시키는 방법론으로 특징된다. 해체의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대상을 이루는 형상과 속성의 불합치성, 절대적 개념에 내재된 간극이 갖는 모순들, 그리고 이상과 현실 사이에 실존하는 개별자이다.
이번 개인전에서 권민철은 일상에서 통용되는 완벽한 날씨와 그곳에서 경험되는 정서를 이루는 근간을 탐구한다. 작가의 작업은 완벽한 날씨가 가질 수 있는 주요한 속성들을 모방하고 그것이 갖는 보편성을 질문한다. 작품 〈인형의 원단으로 지은 언덕〉은 윈도우(Window XP) 배경화면 이미지로 잘 알려진 “Bliss(행복)”를 소재로 한다. 작가는 청명한 하늘의 색을 닮은 푸른빛의 아크릴 보드, 구름의 형상을 그대로 딴 목재 조형과 그 특성을 닮은 깃털처럼 가볍고 새하얀 스티로폼 구, 그리고 부드럽고 푸르른 잔디를 섬유의 털로 모방함으로써 완벽한 날씨의 조건을 충실히 구현하지만, 부조화를 이루는 요소들은 완전한 풍경이 되지 못한 채 이질적으로 공존한다. 나무 사이로 비추는 햇살과 구름이 있는 풍경과 같은 〈모든 요소들은 각자의 전략을 고백해야 한다〉에서 아크릴과 종이로 재현된 구름은 형태와 이미지의 차원에서 완전한 구름을 재현하고 있지만 우리는 이곳에서 일상의 구름이 불러일으키는 친숙한 감각을 얻지 못한다. 주황빛의 아크릴로 표현된 햇빛 조각이 따스한 햇살의 분위기는 흉내내지만, 유려한 움직임은 갖지 못하는 것처럼, 작가는 대상을 감성적으로 인식하게 하는 속성의 일부를 정확히 표현하면서 동시에 불합치한 소재를 사용하는 것을 통해 대상을 향한 익숙한 심상을 기이하게 비틀어낸다. 이곳에서 얻지 못하는 감성은 이들이 단지 ‘순수한’ 자연물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러할까?
사진 작업인 〈완벽한 날씨〉는 날씨 이미지의 연속적 배열을 선보인다. 작가는 이곳에 세 가지의 방식으로 생성된 날씨의 이미지를 뒤섞어 둔다. 작가가 직접 촬영한 날씨 사진과 온라인에서 상품으로 판매되는 날씨 사진, 그리고 인공지능(AI)이 생성한 날씨 이미지가 그것이다. 이 작업에서 작가는 “완벽성”이라는 이상화된 관념을 분석한다. 이곳에 모인 이미지는 기후적 안정성과 심리적 평안함을 자아내기에 일반적으로 ‘완벽한’ 날씨의 조건이라 여겨지는 요소들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 가운데 인공지능이 생성한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완벽한 날씨에 부여해 온 진정성에 균열을 일으키며, 소망이 투영되었던 풍경을 낯설고 이질적인 대상으로 전환시킨다. 작가는 진짜와 가짜, 이상과 현실의 경계를 흐려내어, 우리가 꿈꾸는 완벽한 날씨와 그로 인한 감성이 실은 몇몇 요소의 조합으로 생성 가능한 조건적 상태일 수 있음을 말한다. 전시장의 창문이 그대로 흘러내린 듯 설치된 작품 〈짓궂은 개 짖는 소리와 여름 날씨〉는 전시장의 창문을 통해 바라본 광경을 촬영한 것이다. 작가는 무더운 7월의 어느 하루를 담은 사진을 그것의 출처인 장소에 함께 제시함으로써, 시시각각 변화하는 풍경과 고정된 이미지 사이의 간극을 제시한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 자리한 주관의 심상은 작품 〈잃어버린 물건을 가지러 돌아가는〉에서 더욱 상징적으로 묘사된다. 해변가에 위치한 오래된 광고판을 묘사하고 있는 작업은 우연히 발견한 근하신년 엽서의 이미지가 노을로 보일 수 있다는 작가의 자각에서 시작되었다. 모름지기 떠오르는 태양이 자아내는 광경은 소망과 염원의 상징으로 작용해왔다. 그러나 일출과 일몰의 풍경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작가는 우리의 주관적 심상이 하나의 이미지에 부여하는 상징적 요소를 제거해간다. 이러한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쩌면 무언가를 잃어버려 돌아가는 길에 마주하는 석양 진 풍경은 누군가의 하루를 완벽하게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 작가는 우리 안에 내재한 완벽이 언제, 어떻게 완벽으로 인식되는지 묻는다. 절대적인 이상과 변칙을 반복하는 현실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서로에 영향을 준다. 이상은 매 순간 현실을 끌어올리려 애쓰지만, 때로 현실에 의해 이상향이 변화하는 순간도 있다. 그리고 작가는 이것이 우리의 생각보다 자주, 일상적으로 발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작가의 완벽한 날씨는 그것을 지지하던 자연의 조건과 익숙한 감성으로부터 유리된 채 나타난다. 이것은 자신을 지지하고 있던 속성과 별개로 존재하기도 하며, 완전한 이상으로부터 떨어져 정립되기도 한다. 나아가 완벽한 날씨는 그곳에 쉽사리 동요되지 못하는, 곧 스스로 고립된 개인의 심적 상태와의 간극과 함께 존재한다. 새하얀 벽에 설치된 〈코모레비 연인들〉은 투명한 아크릴 작업으로, 비정형의 문양들은 나뭇잎 사이로 스며든 햇살이 만들어낸 그림자의 모습을 본떠 제작한 것이다. 작품은 순간적으로만 존재하는 그림자를 영구적 소재로 고정한다. 그렇지만 유리처럼 투명한 아크릴은 그림자로서의 본래 속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자신이 속한 배경에 따라 조건적으로 특징지어진다. 없는 듯 존재하는 유령과도 같은 형상은 주체적이고 완전한 관계를 꿈꾸지만 끝내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는 마음을 닮아 있다. 〈어쿠스틱 플레이리스트 썸네일〉은 수면에 빛이 반사되어 일렁이는 물결의 문양을 담아낸 것이다. 권민철의 작업에서 아크릴은 존재와 비존재 사이의 경계 상태로 존재한다. 무엇이든 자신의 배경으로 품을 수 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투명하게 비워내는 상태는, 정형화된 관념을 거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상향을 갈망하는 모순된 마음을 지닌 실존을 상징한다. 작가의 작업은 통상적이고 획일화된 개념과 정형화된 감성을 비틀어냄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세계와의 관계를 다각도로 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무엇인가를 간절히 그리워하는 마음은 사라질 수 없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언젠가 가질 수 있다는 희망 어린 가능성에 중독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권민철은 우리 마음에 드리운 감성을 좇는다. 작가의 작업은 모호하게 존재하는 마음의 상태를 지극히 현실적인 물질로 구체화함으로써, 어렴풋하게만 존재해온 사유의 덩어리를 분리하고 다듬어간다. 작가의 작업은 통상적으로 자리한 보편적 관념의 껍질을 벗기는 과정을 동반한다. 이것은 우리가 속한 사회를 둘러싼 정형화된 개념을 흩트려가며, 개념을 지탱하고 있던 구체적인 실재들을 드러내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 그렇지만 경험해 보지 못한 대상에 그리움을 투영하는 인간의 마음처럼, 작가는 우리가 바라고 그리는 이상을 향한 열망 또한 부정하지 않는다. 작가가 바라본 인간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모순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 권민철은 완벽한 날씨로 대변되는 완전한 일상이나 삶, 관계의 형상을 분해한다. 그리고 완벽을 이루는 요소에 관한 사유를 우리의 과업으로 다시 되돌려낸다. 이 과정은 우리 내면에 자리한 일률적 개념을 해체하고 관습적 심상을 뒤흔든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유리되어 존재하는 개별자의 마음은 또 다른 이상을 꿈꾸며, 자신에게 주어진 세계와의 새로운 합치를 모색한다.
권민철은 개인전 《만나본 적 없는 당신에게》(PLURIPOTENT ART SPACE, 서울, 2024)를 개최했으며, 《누가 우리 나무에 밀가루를 뿌렸나》(더나르떼, 남양주, 2025), 《Color Ensemble》(경기아트센터, 수원, 2024), 《The Society》(김세중미술관, 서울, 2024), 《Finding Prima Materia》(술술센터, 서울, 2022), 《왜 사라지지 않을까?》(우석갤러리, 서울, 2022) 등의 그룹전에 참여하였다.
아티스트 프롤로그 2026 선정작가 개인전
완벽한 날씨
The Perfect Weather
2026. 7. 31. – 9. 19.
아트센터예술의시간 4층
권민철 Gwon Mincheol
주최 | 재단법인 노암
주관 | 아트센터예술의시간
디렉터 | 주시영
큐레이터 | 김민경
어시스턴트큐레이터 | 이시호
에듀케이터 | 유상아
운영지원 | 설미숙
글 | 김민경
사진촬영 | 신유진
그래픽디자인 | 김박현정
설치도움 | 신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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