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Description

2022. 6. 23. – 8. 20.

컨템포로컬(윤주희, 최성균)

여기는 우리 땅이야

주시영 (예술의 시간 디렉터)

원주민 이주 정책이 한창이었던 19세기 중반, 시애틀 추장은 땅을 팔고 떠나라는 미국 대통령에게 ‘땅은 우리의 어머니이며, 우리에게 있어 이 땅은 거룩한 것’이라는 편지를 보낸다. ‘땅이 물려준 이야기, 반짝이는 물, 형제와 같은 강은 누구에게도 소유된 적 없었던 것인데, 어떻게 우리에게 살 수 있다는 것인가.’

자본주의가 출현하기 전까지는 하늘과 땅, 인간과 집은 공존해 왔으며, 주인 있는 땅에 한해서도 일부 권한을 나눠 갖는다는 점에 있어서 땅을 소유하는 개념은 지금과는 달랐다. 움막에서 펜트하우스까지 그곳이 어디든 땅은 인간의 은신처이며, 삶을 이뤄가는 터전이자 공간이었다. 움막 안에서 펜트하우스를 욕망하게 된 건 그리 오랜 과거의 일이 아니다. 땅과 집이 인간에게 무엇인가에 대한 충분한 성찰을 시도할 겨를도 없이 사람들은 집이 아닌 병원에서 태어나고 죽으며, 동네가 아닌 대기업 이름이 붙은 고층 아파트에서 살게 되었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전이는 부지불식간에 일어났고, 거주공간으로서의 가치보다 투자 가치가 중요해진 현실은 우리 중 대부분을 거주자가 아닌 재산 관리인으로 살게 했다. 경계 안에 속한 땅을 함께 소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라는 집단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개인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이익집단이 ‘우리’가 된다면, 전시 명에 사용한 ‘우리’는 거대한 자본주의 시스템에 적응하고자 발버둥치는 불안한 집단주의적 몸부림이라 할 수 있겠다.

예술의 시간, 2022 지역기반프로젝트 《여기는 우리 땅이야》는 물질적 개념으로서의 땅(지역)이 삶의 반경 안에서 나(우리)와 어떤 관계를 구축해 가는지 관찰한다. 그리고 소유로서의 땅, 재산으로서의 집을 보호하는 사회적 합의와 그 안에서 작동하는 개인-공동체의 관계에 관해 질문을 던진다. 이번 전시에서 컨템포로컬은 내 땅을 지키고자 하는 우리의 욕망이 삶과 죽음을 가르는 치열한 전쟁에서의 생존방식과 다를 바 없음을 말한다. 한편, 개인과 집단을 이루는 가시적, 비가시적 요소들이 부조화와 조화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것을 뒤쫓는다.

컨템포로컬이 2014년부터 지속해 온 연구는 그들이 위치한 서울의 언저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다. 진도군 조도에서의 작업 〈우리가 있는 기념비〉 2015, 시흥시 월곶에서의 〈월곶, 사운드스케이프〉 2016, 강원도 양구에서의 〈PUNCH BALL〉 2018, 관악산에서의 〈숲세권-관악산〉 2019, 시흥시에서의 〈우리가 있는 기념비 in 시흥〉 2019로 연결되는 작업들은 이들이 삶의 반경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려는 사람과 장소에 관심을 두고 끊임없이 파고든 궤적이다. 이후 〈날아가고 스며들고 젖어들고〉 2020, 〈감각노동〉 2016-2021 시리즈에는 예술가로서의 정체성과 이들의 숙명적 키워드인 가족, 노동의 문제가 담겼다. 양육의 과정을 겪으며 단단해진 경험은 작가가 속한 ‘우리’안에서 목소리를 드러낸다.

땅따먹기 놀이의 기괴한 결과물을 주거 형태로 설계한 설치작업이 2층 전시장 배경을 두른다. 이 작업은 건축가 그룹인 ‘어반소사이어티’와 협업하여 설계하였으며, 놀이로 획득하게 된 기이한 모양의 땅에 실제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어떤 모양의 땅이든 점거하는 행위로 지켜내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를 담는다. 2층 전시장 한가운데 펼쳐진 모듈 조립 설치작업은 현실 세계의 전쟁과 가상 세계의 전쟁 게임에서 내 땅임을 선포하거나, 내 땅이 되도록 전략을 구상하는 기호에서 빌려왔다. 이 상징적 기호는 전시장 한가운데에서 사뭇 장엄하게 공간을 점령한다. 모듈 바깥쪽에는 벌레 한 마리도 침범하지 못하게 하는 강력한 살충제를 발랐다. (바퀴벌레의 갑작스런 등장이 당신의 일상을 한순간에 어지럽혔던 경험이 있지 않은가! 전시장 한가운데 널브러진 커다란 바퀴벌레 한 마리는 작가의 경험이다.)
4층 전시장에서는 지역 경계 표지판을 따라 걸으며 경계 안에 있거나, 경계 밖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경계를 알리는 표지판에는 대개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와 같은 친절한 인사말들이 쓰여 있지만, 이 인사말 역시 경계 안에 속한 사람들이 건네는 인사이지, 경계 밖에는 또 다른 경계와 집단이 이어질 뿐이다. 경계는 우리가 속한 집단을 견고히 하는 장치이자, ‘우리’는 ‘너희’와 구별되었음을 확실히 해두는 선 긋기다. 전시장을 채우는 네 개의 경계 표지판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이에 대한 반격이라 할 수 있겠다. 이 표지판은 선 긋기를 재차 확실히 해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분명한 선도 흐려질 수 있으며, 뚜렷한 경계도 모호해질 수 있어서 실은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는 표지판은 빛을 반사하는 방식으로 메시지를 발산한다. 벽면에 걸린 배낭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면, 경계를 걷는 이들의 치열한 삶을 잠시라도 초월할 수 있다. 바람, 햇빛, 음악, 파도, 강과 같이 경계로부터 자유로운 것들은 경계 위에서 지친 삶을 위로하고, 발길과 시선이 닿는 곳이라면 지구 끝까지 달려가 깃발을 꽂는 집단적 광기가 잠시만이라도 멈춰진 순간을 상상하게 한다.

우리 삶의 터전은 역사와 이야기가 부재한 채 효용 가치만을 좇아 도시라는 불야성으로 정처 없이 옮겨왔다. 효용성의 극대화가 땅에 적나라하게 펼쳐지면서, 제각기 그어놓은 선은 내가 얼마나 효율적이고 똑똑하게 살아왔는가를 평가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땅 있음’과 ‘땅 없음’은 ‘땅 조금 있음’과 ‘땅 많이 있음’으로, 다시 ‘어느 땅 있음’과 ‘어느 땅 없음’으로 갈라진다. 경계에서 밀려난 사람들에 대한 일말의 재고도 없는 땅따먹기 놀이의 현실은 이 시대 그 어떤 현실보다 절박하고 진지하다. 어떤 이들은 꿈꿔왔던 땅에 도착했을 때 이미 그 땅이 점유되어 있음을 보고 밀려나기를 반복하면서도, 여전히 ‘어느 땅’ 한 귀퉁이 안으로 진입하고자 하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여기가 우리 땅임을 선포하고자 하는 욕망은 삶을 어떻게 유지하는가에 대한 개인의 태도는 물론 이 시대의 불안과 직결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 안에서 확보한 내 땅에 대한 내 권리 행사는 분명한 선 안에서 보호 받는 것이지만, 사회적 확실성 바깥에서 불확실하게 존재하는 누군가는 경계 밖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당신이 오늘 밤 돌아가 쉴 그곳에 모여 있는 ‘당신의 소중한 우리’ 역시, 상황에 따라 경계 안에 존재할 수 있고, 경계 밖에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컨템포로컬 (ContempoLocal)
윤주희, 최성균 두 작가가 서울 금천구를 중심으로 결성한 듀오이다. 이들은 주로 도시와 지역을 이루는 요소들 사이의 관계와 그 안에서 벌어지는 다이내믹을 관찰하여, 특정 집단과 그들의 배경 사이의 연관성을 탐색한다.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려는 사람 혹은 장소에 관심을 갖고, 주변부를 배회하며 구조 안에서 개인과 공동체를 주제로 작업한다. 이들은 현재 금천구 시흥동에서 작업실이자 전시공간인 <범일운수종점Tiger1>을 운영하면서 지역을 동시대적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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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지역기반 프로젝트: 여기는 우리 땅이야
This is Our Land
2022. 6. 23.(thu) – 8. 20.(sat)
주최 |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후원 | ㈜영일프레시젼
참여작가 | 컨템포로컬 (윤주희, 최성균)
디렉터 | 주시영
큐레이터 | 김민경
에듀케이터 | 유상아
운영지원 | 설미숙
글 | 주시영
작가노트 | 윤주희
사진촬영 | 송호철
기술자문 | 이병옥
협업 | 어반소사이어티, 성상식
그래픽디자인 | 어떤디자인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