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Description

2023.12.21.  –  2024.1.27.

강우영 Woo-Young Kang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니,

주시영(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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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마지막 밤 1

어둡지 않은 시대는 없었다. 21세기에 들어선 오늘도 이 시대는 여전히 어둠 속을 헤매는 현실이다. 세계가 서서히 스스로 완전해 질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은 어쩌면 우리의 진정한 의무와 방향을 잊게 하는 신화일 뿐인지도 모르겠다. 과학기술시대에 묵시록적 가르침을 논하는 것이 어둠을 더욱 어둡게 하는 일이 될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둠이 있음을 알 때야 비로소 빛을 감지할 수 있으며, 빛의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는 힘은 어둠에서의 경험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빛이 어둠 속에 침투해 틈을 벌려놓을 때에야 인간은 자신이 서 있는 곳의 어둠의 실체를 제대로 볼 수 있다.

강우영은 전시 《Full Load》에서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의 삶의 무게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작업 〈Full Load〉를 선보인다. 삶의 짐을 지고 가는 개인들을 은유하는 51개의 유리 조각이 전시장을 채운다. 위태롭게 매달린 유리 파편들은 휘어질 듯 버티는 중이다. 무거운 짐을 진 이들의 한계점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것 처럼 무겁다.

산다는 것을 힘겨운 짐으로 느껴보지 않았던 이가 있을까. 시대의 고통이 개인의 고통으로 전가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핵개인이 새로운 개인의 도래를 대변하는 키워드로 회자되는 요즘이지만, 모든 개인은 동시대의 문화와 역사적 상황들 안에서 유기적인 영향을 주고 받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인 것은 불변하는 진리이다. 어느 때보다 이성적이고 과학적이며 합리적이라는 지금이, 실은 광기가 지배하는 시대라는 하이데거의 진단은 여전히 유효하다. 시대적 불안은 개인의 존재론적 불안으로 이어졌고, 카뮈의 말처럼 ‘불안은 우리가 항상 타고 다니는 전철 속에서, 아니면 반복되는 일상적인 일을 하는 중에 갑자기 우리를 사로잡을 수 있는 것’이 되었다. 불안은 안전하다고 느꼈던 세계를 순식간에 황량한 낯선 곳으로 만들었고, 고립감과 허무감은 개인에게 무력감을 남겼다. 새로운 것을 쫓고, 허한 마음을 메우고자 하는 끝없는 시도는 우리를 도처에 있으면서도 아무 곳에도 없게 하는 상실을 안겨주었다.

친구가 어렵게 꺼낸 폭력의 기억에 어떤 위로의 말을 해야할지 몰라 결국, 아무 말도 못했던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 무너지는 것은 건물들과 다리만이 아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매일 성수대교를 건너 등하교했던 친구들, 날마다 벌어지는 사건과 범죄, 불행의 그림자들, 균열을 일으키는 모든 것이 이 어두운 시대를 더 짙은 어둠으로 물들이고, 각자가 짊어지는 짐은 조금씩 더 무거워졌다. 나를 비껴간 불행을 보며, 내 안에 숨겨진 ‘나만 아니면 돼’라는 안도와 소름끼치는 침묵이 다시 어둠 속으로 숨게 했다. 폭력과 고통, 고난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개인의 삶에 파편처럼 박히는 경험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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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하게 깜박이며 약할지라도 빛나는

“우리는 가장 어두운 시대에도 밝은 빛을 기대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밝은 빛은 이론이나 개념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불확실하면서 깜박이는 약한 불빛에서 나올 수 있다.” 2

우리는 종종 위태로움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강우영은 무거운 짐을 짊어진 우리가 안전한 곳으로 돌아가는, 회복의 순간을 상상한다. 이것은 일종의 판타지다. 마치 불협화음에서 화음을 찾은 것 같은 초월적 경험이다. 〈Full Load〉는 날선 칼날같이 관람자의 목을 향해 매달렸지만, 일렁이는 모양은 물결처럼 은은하다. 깨질 듯 위태롭지만, 차분히 가라앉은 충만한 상태를 떠올리게 한다. 작가는 어둠과 빛의 관계를 대립관계 만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공중에 매달린 유리의 불협 속에서 조화를 암시한 그가 정작 부각시키고자 하는 것은 우리에게 필요한 빛이다. 강우영은 그의 이전 전시 《야간채집》, 《Lost》, 《Who Knows》 등을 통해 사회적, 정치적 상황의 어둠과 그로부터 확장된 세계를 관찰하는 것에 집중했다. 시대적 어둠과 개인의 문제는 강우영이 꾸준히 관심을 갖고 바라본 주제다. 이전 작업들에서 다룬 사회적 위태로움이 《Full Load》에서는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위태로움으로 진전되었고, 소통의 부재와 사회로 돌아오지 못하는 자들에 관한 이야기는 이들의 회복을 암시하는 이야기로 나아갔다. 작가는 깨져버린 유리판의 초월적 가치, 그것을 영원이라고 말한다면 희미하지만 새어나오는 빛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옆에 있는 이의 상처를 살펴볼 수 있는 태도, 위로의 마음을 건넬 수 있는 말이 빛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작가는 사회의 온전한 작동이 개인을 도울 수 있다는 희망을 갖는다. 가치와 목적을 잃은 시대에 사는 개인으로서 작가가 제기하는 상실의 회복은 날카로운 유리 사이를 비추는 약한 불빛에서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가치는 세계가-대상이-인간과 맺는 관계에서 지니는 중요성의 척도다. 예술은 예술과 세계(땅)와의 관계, 예술과 다른 세계(하늘)와의 관계를 수립하는 방식이 될 때 비로소 철학적 울림을 동반하는 것이 될 수 있다.”3 아름다움과 추함의 기준, 선과 악의 기준, 좋음과 나쁨의 기준은 모두 길을 잃었다. 목적을 상실하여 불안하고, 외롭고, 고통스러운 개인의 본질적 변화(transformation)는 어떻게 가능할까. 빛이 되는 가치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믿음을 갖고, 깨어진 유리판 사이를 지나 희미한 빛이 새어나오는 작은 방으로 향한다. 우리는 이곳에서 어쩌면, 영화 〈밀양〉의 마지막 장면에서 신애의 집 마당 한 구석을 비추던 ‘그 빛’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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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세계

자신의 몸을 조금 숙여야만 들어갈 수 있는 문을 통과하여 만나는 작업은 〈어떤 말〉이다. 빛이 새어나오는 장미창이 새겨진 방으로 들어가면 깨어진 유리로 제작한 묵주가 놓여있다. 묵주(rosarium)는 라틴어로 장미화관을 뜻한다. 묵주기도의 기도문에 담긴 네 가지 신비인 환희, 빛, 고통, 영광은 전시장 전체를 채우는 칼날 같은 파편을 지나서야 눈 앞에 드러난다. 삶을 순례로 바라보는 이들의 관점에서는 근원, 여정, 미래까지도 하나의 묵주에 담긴다. 강우영은 근원에서 시작하여 끝을 향하는 시간의 흐름을 단지 과거에서 미래로 향하는 일방향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깨어진 유리로 만든 그의 묵주가 상징하는 순환이 고통의 순환이 될지언정 작가는 그 순환성이 삶, 기도, 위로에 덮여 있기를 소망하는 듯 하다. 묵주의 메타포는 개인의 내면 깊숙한 곳으로 침투하여 각자의 이야기로 펴져나간다. 이 작은 공간은 전시 공간 전체에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중심부로써 역할한다.

어떤 가치든 자본의 가치로 변환시키는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는 인간 관계도 사물화된다. 이 안에서 연대와 공감은 약화될 수 밖에 없다. 자기중심주의와 나르시시즘은 연대와 공감의 결핍이 초래한 개인주의의 부작용이다. 개인이 자신이 가진 순환성을 살피고, 역사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나와 나의 내면을 돌아보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 아렌트는 우리가 타자를 만나 진정한 이웃이 될 수 있는 것은 신의 현전 속 자신의 고립상태를 인식할 때 뿐이라고 보았다.4 실존적 개인이 온전치 않은 자신의 참 모습을 인식할 때 이웃이 보이고, 나를 돌보듯 이웃을 돌아볼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이처럼 깨어진 개인의 연결은 묵주가 담고 있는 또 다른 이야기다. 결코 역사로부터 분리된 개인일 수 없는 나를 발견하는 곳은 지금 내가 참여한 세계이며, 공동체다. “나는 과거와 함께 태어났다. 그리고 이러한 과거로부터 개인주의적 방식으로 나 자신을 분리시키려는 시도는 나의 현재 관계들을 일그러뜨리는 것을 의미한다.”5 인간은 인간답게 살기 위해 모이기를 힘쓴다. 혼자이고 싶지만 외로움의 고통은 피하고 싶은 오늘날, 개인의 유대와 연대는 더욱 중요한 덕목이 되었다.

강우영은 작품 〈어떤 말〉을 통해 ‘말의 힘’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말한 하이데거는 인간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인 것을 아는 자로서, 즉 존재론적 한계를 아는 한에서만 진정한 의미의 말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자신의 존재를 겸손하게 받아들인 이의 말은 존재와 나 스스로에게 동시에 깃들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그제서야 우리는 정화된 말을 통해 치유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작가는 3층에 전시된 〈한파 연작〉 중 〈부러진 말〉, 〈뱀의 말〉, 〈행간〉 등을 통해서도 전달되는 언어로서의 말, 상대에게 ‘말’을 한다는 것의 의미에 관해 묻고 있다. 강우영의 ‘말’은 태도와 직결되고, 그 ‘말’의 태도는 겸손과 연결된다.

사실 우리는 고통 앞에서는 말을 잃는다. 고통은 말을 빼앗는다. 우리 사회가 점차 치유의 원상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말 걸기, 손 잡기, 어루만짐의 포근한 느낌으로 서로를 경험하는 일이 드물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치유하는 타자의 말과 손이 우리 곁에서 사라지고, 말과 손의 치유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잃어버린 시대는 만성적 고통에 시달린다. 사회관계에서의 불화, 뒤틀림, 경직이 모두 만성적 고통의 병인이 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원인은 의미를 상실한 사회이다.6

“이 시대의 예술은 가치에 대한 정신의 긴장이 크게 약화되면서, 동시대의 불행에 냉담하다…새롭게 구성되어야 하는 새로운 방향은 예술을 다시 가치의 긴장, 정신의 진동으로서의 철학에 결부시키는 것, 땅과 하늘, 유한성과 무한성의 세계에 접붙이는 것이다. 이 시대의 모든 참다운 고통을, 강요된 침묵과 도덕적 고립, 불행한 사람들과 더는 멀찌감치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7

작가들에게서 보이는 가치의 약화는 비단 오늘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작가는 인간의 모든 상황들을 표현하고, 자신의 작품에 시대를 반영하고,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며, 그 저변에 자리잡은 철학까지 고민하는 일을 한다. 글을 쓰는 작가든, 어떤 형태의 예술을 창조하는 작가든 자신의 창조물을 설명하고, 그것이 무엇과 연결되어 있는지 보여주어야 한다. 이러한 작가로서의 예술적, 사회적 책무를 놓고 볼 때, 강우영은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자신의 작업에 성공적으로 결부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결코 가볍지 않은 오랜 고민은 그의 작품에서 겸손한 말과 태도로 드러나고, 그것은 ‘이 시대의 예술의 가치가 놓치고 있는 시대의 참다운 고통, 불행한 사람들과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노력’으로 표현된다. 강우영의 작업에 대한 진정성은 인간성의 회복으로 나타난다. 아렌트가 주요하게 탐구한 “이웃의 적실성(the relevance of the neighbor)”8이 강우영의 작품에서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이웃의 사랑이 실현되는 이 곳, 바로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세계’가 강우영이 구축하고 전달하고자 하는 ‘말’이다. 가치가 사라지고, 목적을 상실한 시대에서 전시 《Full Load》의 메시지가 불확실하게 깜박이며 약할지라도 빛나는 것이 되기를 바란다.

1. C.S.루이스의 에세이 『세상의 마지막 밤』의 제목에서 가져왔다.
2. 한나 아렌트,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 p.63.
3. 심상용, 「예술사회학을 지나야 예술철학이 나온다-작가편」, p.5
4. 한나 아렌트, 『사랑 개념과 성 아우구스티누스』, p.281-282.
5.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 『덕의 상실』, p.423.
6. 한병철, 『고통 없는 사회』, p.49.
7. 심상용, 「예술사회학을 지나야 예술철학이 나온다-작가편」, p.8.
8. 한나 아렌트가 그의 박사 논문에서 중요하게 다뤄졌던 이 주제는 인간 실존의 조건, 다시 말해 인간의 조건을 발견하는 과정으로 말할 수 있다. 어떤 이웃인지 탐구하는 일은 이 세계 안에 살아가면서 동시에 이 세계를 이루고 있는 인간 종족의 일원으로서 나와 이웃의 실존을 탐구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인미,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정치 수업』, p.298.

강우영(b.1975)은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예술대학 대학원 미술연구과 인터미디어 아트전공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2012년까지 일뵨을 거점으로 장소특정적 설치작가와 지역 기반형 퍼블릭 아트 프로젝트의 연구자로 활동하며 Toride Art Projec(Japan)등 다수의 국제 퍼블릭 아트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unspoken words》(TAP2006 Satelite Gallery, 일본, 2006), 《unspoken words》(보충대리공간 스톤 앤 워터, 2008), 《야간채집》(인천아트플랫폼, 2015), 《Lost》(김종영미술관, 2016), 《Who knows》(Cross Gallery of THAV, 타이페이, 2017), 《침묵의 생태계》(세컨드에비뉴 갤러리, 2019)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이외에도 국립현대미술관, 소마미술관,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 등에서 개최된 다수의 단체전과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 입주작가(2014-2015),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입주작가(2015-2016), 김종영미술관 창작지원작가(2015), MMCA 국제교환입주 프로그램(2016)에 선정된 바 있다.


Full Load
2023. 12. 21.(목) – 2024.1.27.(토)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2층
강우영
주최 |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후원 | ㈜영일프레시젼
디렉터 | 주시영
큐레이터 | 김민경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 이재희
에듀케이터 | 이보연
운영지원 | 설미숙
글 | 주시영
사진촬영 | 전민혁
디자인 | 김민혁(페이퍼컴퍼니)
공간설치 | I&F
설치 | 최민석(그린레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