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Description

2023. 6. 8. – 7. 5.

강민숙 배윤환 이민선 홍정표 SW기획(김방주, 한승우)

오프-타임 OFF-TIME
유은순(독립 큐레이터)

1.

성장, 진보, 혁신은 자본주의를 채택한 국가의 손쉬운 표어이다. 이는 주로 경제 수치로 구체화된다. IMF에서 매해 발표하는 경제 성장률은 전세계적인 위기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플러스 성장을 전망해 왔다. 모든 국가는 경제 성장과 기술 혁신이 쾌적한 삶과 풍요로운 미래를 가져올 수 있다고 설파한다. 여기에 새로운 신념이 부상한다. 1970년대 대처리즘(Thatcherism)과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로 대두된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자율성과 효율성을 앞세우며 경쟁을 정당화한다. 마치 자본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신자유주의가 요청된다는 듯이 말이다. 그것은 사회⋅정치⋅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주체에게도 내면화되었는데, 피에르 다르도와 크리스티앙 라발은 이를 “새로운 세계합리성”이라고 정의한다. 신자유주의는 비교적 최근에 출현하였다는 점에서 새롭고, 전세계적으로 전면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적이다. 또한 우리의 행동을 구성하고 조직한다는 점에서 이데올로기나 경제 정책이기 전에 하나의 합리성이다.1)

오늘날 국가와 사회, 개인은 숙련되지 않고, 미성숙하고, 부족한 상태에서 숙련되고 성숙하고 완전한 상태로 나아간다는 진보 서사를 믿으며 단 한순간도 버릴 틈 없이 끊임없이 개발하고 계발해 나간다.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삶에서 시간은 언제나 부족하고, 바쁨은 습관이 되었다. 우리 인생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이미 촘촘하게 설계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걷기 시작할 때부터 죽음에 이를 때까지 개인의 삶은 이미 국가와 교육기관, 기업에 의해 계획되어 있다. 맬컴 해리스는 『밀레니얼 선언』에서 사회가 생산성 향상과 효율성 추구에 기반하여 새로운 유형의 노동자를 요청했다고 말한다. 밀레니얼 세대는 “생산성 향상의 엔진”으로서 경쟁을 내면화하여 높은 수준의 교육을 감내하고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며 기꺼이 자신의 역량을 갈고 닦는다. 그러나 일자리 안정성은 약화되었고 임금은 더욱 악화되었으며, 끝없는 경쟁에 스스로를 계속 내몬다.2)

한편, 개인은 남들보다 빠르게 고지를 선점하고 부러워할 만한 삶을 영위해야 한다고 믿는다. 삶의 모든 순간 일어나는 사건은 실시간으로 SNS로 공유된다. 서로가 서로의 취향을 탐닉하고 기호품은 어느새 필수품이 되어 소비를 조장한다. 삶의 기준은 나날이 높아지고 갖지 않은 것은 갖지 못한 것이 된다. 풍요가 문화로 정착되면 “현대화된 가난”이 찾아온다.3) 실제로는 가난하지 않더라도, 구입해야 할 상품이 늘어나면서 우리의 삶은 더욱 빈곤해진다.
‘완성된 개인’이라는 의미에서 ‘어른(성인)’이라는 개념은 세대에서 세대로 이행할수록 계속해서 지연된다. 결혼, 취업, 출산 등은 해가 거듭될수록 평균나이가 더 높아지고 있고, 지식의 확장은 인간 한계를 넘어서 범접할 수 없는 속도로 나아가고 있다. 이상적인 삶에 대한 바람은 곧 우월주의, 서열주의로 귀결되며, 그에 따라 정상/비정상, 어른/아이/노인, 장애/비장애, 인간/비인간 등을 구분 짓고 차별을 정당화하는 계기가 된다. 이미 높게 설정되어 있는 목표(완전성)에 도달하지 못한 개인의 불안은 그에 비례하여 더욱 커진다. 중산층의 재산, 건강한 신체, 유려한 외모, 남들보다 뛰어난 스펙, 완벽한 청결 등 사회가 요청하는 기준은 삶의 만족도를 떨어뜨리며, 개인을 계속 지연된 상태로 만든다. 충족되지 않는 기대에 도달하기 위해 개인은 시간과 몸을 혹사하며 살아간다. 모든 선택은 미래를 위한 선택으로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선택을 종용받는다. 우리에게 누구도 이러한 선택을 강제한 적은 없지만 그 밖의 선택지가 주어진 적은 없다.
2.
하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는 월 스트리트의 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근무하였던 특이한 인물 바틀비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단편소설이다. 그는 자신이 맡은 필경 업무를 사무실의 그 누구보다도 완벽하게 이행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상사인 변호사의 요청에 “저는 하지 않는 편을 선호합니다 I would prefer not to…”라는 독특한 거절의 표현으로 응답하기 시작한다. 우체국을 가는 사소한 일부터, 자신이 맡은 업무인 필경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답변으로 응하다 해고에 이르지만,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킨다. 마침내 변호사는 사무실을 옮기는 강수로 대응하며 그를 두고 사무실을 떠난다. 바틀비는 변호사가 떠난 뒤에도 사무실에 머물다 수감되고 음식마저 거부하다 죽음에 이른다.

필경은 정확성과 성실함을 바탕에 둔 반복적인 업무이다. 이 단순 업무는 일말의 비판적인 사고도 요청하지 않는다. 사무실의 필경사들은 하나씩 하자를 가지고 있다. ‘칠면조’라는 별명을 가진 인물은 신경증이 있고, ‘펜치’라는 별명을 가진 인물은 소화불량이 있다. 바틀비는 누구보다 성실했지만, 이내 모든 일을 거부한다. 필경사는 신자유주의가 내면화된 현대인의 표상으로 볼 수 있다. 앞선 두 인물은 기존의 체제에 순응하면서 그로 인해 심리적이고 신체적인 질병을 겪지만 그 어떤 의문도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틀비는 보다 근원적인 문제 – 그에게 주어진 전제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다. 명령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하는가? 그는 “하지 않는 편을 선호합니다 I would prefer not to…”라고 말함으로써 잠재성이 실현되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을 암시하며, 할 수 있는 잠재성과 하지 않을 수 있는 잠재성 사이의 결정 가능성 자체에 저항한다.4)

우리가 가진 잠재성이 신자유주의의 내면화된 주체로서 응당 실현해야 하는 비좁은 방식으로만 실현되어야 한다면 삶은 얼마나 획일적이고 무가치해질까? 제니 오델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에서 관심경제가 만연한 현 세계에서 자본주의적 가치 체계를 인식하고 준거 기준을 거부하는 ‘그 자리에서의 저항’을 주장한다.5) 세계의 지배 체제에 저항하기 위해 외딴 곳에서 스스로 소외된 삶을 살기보다, 나의 관심이 화폐가치로 교환되는 상황을 거부하고 자본주의의 기준에서 소외된 것들에 관심을 가지기를 요청한다. 그것은 자본주의가 가속화하는 삶에서는 무가치한 것,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 보인다. 바틀비는 하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3.
기획전 《오프-타임》은 신자유주의 내면화가 만연한 시대에 효율성 기계가 된 개인의 삶을 돌아보기를 제안한다. ‘오프-타임 off-time’은 기계가 돌아가지 않는 비작동 시간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이는 자본주의 생산체제에서 비효율적인 시간으로 간주되며, 이 시간을 줄일수록 사용자(기업가)의 이익은 증가한다. 전시는 자본주의에서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이라고 치부되는 것을 긍정하고 작동 시간을 지연시키고, 반복하고, 중단시킴으로써 비작동 시간을 활성화해본다.
배윤환은 성장 본위의 세계에서 희생되는 인간과 동물의 삶을 암시하는 우화에 기반한 <키득대는 빙하들>과 <일요신간도서>를, 홍정표는 완전성에 도달하려는 의지가 미끄러지는 과정에서 유희를 찾는 <9번 불러오기>를 선보인다. 배윤환과 홍정표가 신자유주의의 내면화와 이를 극복하려는 태도를 보여준다면, 이민선과 강민숙은 현대사회에서 무의미하고 비생산적이라고 치부되는 종류의 것(돌봄노동, 일상의 관찰 등)에 관심을 기울이고 기존의 가치체계를 예술의 영역에서 다시 사유하고자 한다. 이민선은 <알게 모르게>, <의뢰인>을 통해 의미와 무의미, 노동과 비노동, 생산성과 비생산성의 이분법적 구분에 의문을 제기한다. 강민숙은 <담요 저항>과 <예술 노동 삶>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평가절하 되는 돌봄과 예술 노동을 재고한다. SW기획(김방주, 한승우)는 공간 전체에 개입하는 작업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했어요. 들어가세요.>를 선보인다. 모던하고 효율적인 공간 구성에 반하는 우연적이고 열린 전시 공간을 연출하기 위해 공사가 중단된 어떤 상태를 구현함으로써 잠재된 에너지를 보여준다.
《오프-타임》은 타의적으로 부과된 목표에서 탈선하고 기존의 가치체계를 재편하고 가속화된 삶을 의식적으로 멈춰보기를 제안한다. 정지 상태의 불완전성이 가져오는 높은 엔트로피 속에서 잠재성의 갈래는 오히려 무한해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전시를 통해 사회의 관성을 거스르는 예술적 실천에서 새로운 삶-정치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6)


1) 피에르 다르도⋅크리스티앙 라발, 『새로운 세계합리성』, 심세광⋅전혜리 옮김, 그린비, 2022, pp. 21-33.
2) 맬컴 해리스, 『밀레니얼 선언』, 노정태 옮김, 생각정원, 2019, p. 15.
3) 이반 일리치,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허택 옮김, 느린걸음, 2017, p. 34.
4) 조르조 아감벤, 『호모 사케르』, 박진우 옮김, 새물결, 2008, p. 117.
5) 제니 오델,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법』, 김하현 옮김, 필로우, 2021, p. 25.
6) 관성과 엔트로피에 관한 내용은 SW기획과의 대화(2023년 4월 6일)에서 참조했다.

배윤환

배윤환은 <키득대는 빙하들>(2023)과 <일요신간도서>(2023)에서 기후 위기의 대표적인 희생양으로 알려진 북극곰을 포함하여 다양한 동물로 핸드퍼펫을 제작하여 인형극을 펼친다. <키득대는 빙하들>은 분노조절장애, 폐소공포증, PTSD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정신질환을 가진 북극곰이 온난화로 인해 집을 잃을 위기에 처하는 데서 시작한다. 부동산을 방문하여 집을 구하는 한편, 하는 수 없이 육지로 이동하게 되면서 그곳에 적응하기 위해 등록한 학원에서는 실패 확률이 50%라는 진위를 알 수 없는 능력향상 약물을 강권 받는다. 한편 <일요신간도서>는 그보다 앞서 도시로 향했던 북극곰 ‘솜사탕’의 이야기를 담는다. 그는 도시에서의 고단함을 담은 신작을 소개하기 위해 TV프로그램에 출연하지만 해리성 장애와 감정조절장애로 어설프게 홍보를 마친다. 인간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체제를 고안하지만 역으로 환경에 해를 끼치고 삶을 위기로 내몰고 있다. 작업은 인간이 자초한 기후 변화와 불안한 경제, 양극화 등의 위기가 동물과 인간 모두에게 해당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현대 사회의 모순을 익살스럽고도 씁쓸하게 담아낸다.

홍정표

홍정표는 완벽한 상태에 다다르고자 하는 작가의 욕망을 인정하고 자신의 내적 한계를 작품에 투영하면서 예술의 의미를 찾는다. 완전성에 도달하고자 하지만 계속해서 실패하는 과정은 작품에서 과장된 오류의 증폭으로 이어지거나 세밀하게 다듬어진 불완전한 마감으로 재현된다. 작가는 자신의 욕망을 열등감에서 단정 짓지 않고 일상적이면서 반복적인 행위로 극복시켜 나간다. 종국에는 자신만의 고유한 기준으로 전환되며 작품은 그 자체로 온전하게 완전해진다. <9번 불러오기>(2023)는 특정한 시간을 반복해서 경험하면서 더 나은 상황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타임루프물의 주인공처럼, 같은 시간을 반복하여 작품을 만들면 더 나은 작품을 만들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10일 동안 매일 같은 시간(오전 9시~오후 4시), 동일한 재료로 작품을 제작한다. x, y, z 축으로 이루어진 기본 몰드를 시작으로 사면체의 선분을 구성하기도 하고 모서리만이 덧붙여진 채 더 두꺼운 뼈대를 형성하기도 한다. 총 10개의 조각은 서로 복제되지 않고 매번 다르게 반복된다.

이민선

이민선은 설치작업 <알게 모르게>(2023)와 영상작업 <의뢰인>(2023)을 통해 창작과 노동의 생산성을 재고한다. <알게 모르게>는 천장에 설치된 구멍 난 베개에서 거위털이 하나 둘씩 떨어지며 관람자와 작품을 은근하게 방해하는 작업이다.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으로 작동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 것이다. <의뢰인>은 사건을 의뢰받고 추리로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물 형식을 가진 영상작업이다. 탐정소설은 상식을 벗어난 불가사의한 사건이 발단이 되어 탁월한 실력을 가진 탐정이 해결하는 구조를 취한다. 탐정은 세계의 모든 이치를 꿰뚫고 있는 합리성의 화신이다. 하지만 <의뢰인>에서는 이렇다 할 사건도, 명쾌하게 설명되는 진상도 없다. 작가가 일상적인 삶에서 카메라를 들게 만들 정도만큼의 매력을 끈 영상 클립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오디오북의 형식을 차용한 내레이션이 이따금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진실은 언제나 하나”라는 의미심장하고 그럴듯한 말로 마무리되는 이 작업은 합리성에 기반한 기존의 가치 체계를 전복시키며, 무료하게 흘러가는 일상 자체에 관심을 갖기를 제안한다.

강민숙

강민숙은 지난 몇 년간 “예술을 보여주는 것(showing)이 아닌 살아 있는 것(living)으로 전환”하려는 과거의 작가를 동경하며 리서치를 진행해 왔다.7) 좁은 의미에서 예술은 예술계라는 불확실한 테두리에서 진행되는 것이겠지만, 작가는 그보다 더 넓은 의미에서 예술을 실천하고자 한다. 삶과 예술이 결합될 수 있다면 그것은 예술로서의 삶, 삶으로서의 예술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강민숙의 예술적 실천은 곧 자본주의 체제에서 저평가되거나 소외된 것들, 잊힌 것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예술의 영역에서 사유해 보는 것이다. 이번 전시 기간 동안 설치에 참여한 이들의 작업복을 위탁받아 작가가 직접 세탁하고 깨끗하게 개어 정갈하게 설치한 작품 <예술 노동 삶>(2023)과, 자신이 평소에 쓰던 담요에 ‘The secret of permanent creation is to be an unknown artist (영원한 창작의 비결은 무명의 예술가가 되는 것이다)’라고 자수를 놓은 <담요 저항>(2023)이라는 작품으로 참여한다. 두 작품은 돌봄과 예술 노동이 화폐가치로 환원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무가치하기만 한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며, 상반된 설치 방식은 일상(노동)과 예술(노동)이라는 통상적인 구분의 모호함을 보여준다.

SW기획(김방주, 한승우)

작가 김방주, 건축가 한승우로 이루어진 SW기획은 작품을 명료하고 안정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화이트큐브 공간을 지양하고 건축에 있어서 효율성과 합리성을 배제하는 방식을 고민하다 “망치로 못을 내려치기 직전”에 멈추기로 한다. 전시 공간은 어느 순간 알 수 없는 이유로 중단된 채 방치된 것처럼 보인다. 공사의 중단은 비용 증가와 공기 지연 등 여러 문제를 일으키지만 관점을 전환하면 공간은 목적성이 전제되지 않은 에너지가 충만한 상태가 된다. 이곳 저곳에 적재된 목재는 사용이 될 수도, 그대로 반납될 수도 있는 잠재성을 가진다. 전시에서는 이를 좌대나 벤치로 활용하며, 때로는 관객의 동선을 유도하거나 방해하는 장치로도 활용된다. 우연적이고 열려 있는 공간에서 그 이후의 상태를 저마다 상상해 보기를 제안한다.


7) 강민숙, 작가노트, 2023.


오프-타임
OFF-TIME
2023. 6. 8.(목) – 7. 5.(수)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2층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창작산실,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참여작가 | 강민숙 배윤환 이민선 홍정표 SW기획(김방주, 한승우)
기획 | 유은순
코디네이터 | 박현
글 | 유은순
그래픽 디자인 | 프론트도어
공간디자인 | SW기획(김방주, 한승우)
장비 및 작품 설치 | 올미디어
운송 | 예인아트